[서울=뉴시스]이수정 기자 = "(이팀장이) 마른 체격입니다. 180㎝에 59㎏에요."
'수갑이 원래 힘을 주면 빠지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 담당자의 대답이다. 그는 "수갑은 다 채워져 있었지만 왼쪽 수갑을 강하게 뺐던 모양"이라고 답했다.
지난달 28일 경복궁 낙서 지시 혐의를 받는 이팀장이 도주했을 당시, 경찰은 기자들에게 '수갑이 채워져 있지 않다'고 알려왔다. 현장 인근 폐쇄회로(CC)TV를 통해 확인한 이팀장 도주 장면에서도 그는 두 손이 자유로운 상태로 보였다.
그러나 다시 확인한 결과 수갑은 채워져 있었다. 다만 도주 과정에서 '빠진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며칠 뒤 브리핑에서 '수갑이 채워져 있었으나 도주 과정에서 뺐다. 손목이 굉장히 얇다'고 해명했다.
구속 수사받던 피의자가 도주한 상황에서 경찰의 해명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수갑이 체형에 따라 '빼려면 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것도 의문으로 남았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도 이같은 해명에 "수갑을 채우면 수갑이 사람 체형에 따라 영향을 받으면 안 되고, 어떤 체형이든 안 빠지게 채우는 게 기본"이라고 지적했다.
허술한 '수갑 해명'은 5개월 만에 검거한 피의자를 놓친 경찰의 부실한 보안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경복궁 낙서 테러 사건이 발생한 이후 5개월 만에 배후 '이팀장'을 검거해 즉시 구속영장을 신청한 바 있다. 법원은 '증거를 인멸하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즉, 신병 확보를 위해서다.
이팀장은 그사이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불법 영상공유 사이트를 운영해왔다.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공범에게 조작된 증거를 제출하게 한다거나, '사이트 운영 관련 긴급체포가 됐다'는 허위 소문을 유포하기도 했다.
지난한 과정 끝에 문화재 훼손을 지시한 피의자를 잡은 것은 '공(功)'이지만, 찰나의 방심으로 수고가 물거품이 될 뻔한 것은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5개월 만에 잡은 피의자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놓친 셈이다.
경찰은 현재 내부 감찰을 통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선 상황이다. 이후 감찰 착수 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조 청장이 "공과 과(過)를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감찰 여부도 불투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 청장은 "유사 사례가 해당 부서 뿐 아니라 서울경찰청 전체에 재발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청장으로서 재발 방지 대책을 직접 챙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과'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그 이후 재발 방지 대책도 면밀하게 세울 수 있다.
공을 치켜세우는 것은 과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세운 후에도 늦지 않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