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데우스 로팍 서울서 앤디 워홀 개인전
'빛나는 그림자: 요셉 보이스의 초상'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1921∼1986)가 서울에서 다시 살아났다.
'미국 팝아트 황제' 앤디 워홀(1928∼1987)이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부활한 보이스는 앤디워홀의 존재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갤러리에서 29일 개막한 '앤디 워홀 개인전'은 펠트 중절모에 낚시 조끼 차림의 보이스 초상 연작을 전시한다.
갤러리 측은 "워홀과 보이스의 역사적인 초기 만남을 재조명한다"며 "보이스의 초상화를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처음 기획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요셉 보이스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플럭서스(Fluxus·전위예술 운동)운동을 펼친 작가로, 백남준 첫 개인전에 도끼를 들고 나타나 전시 중인 피아노 한 대를 부숴버린 일화가 유명하다.
이번에 공개된 워홀과 보이스의 44년 전 빛바랜 사진도 작품처럼 보인다. 1980년 이탈리아 나폴리 사자 조각상 앞에서 손을 맞잡고 찍은 두 사람이 모습이 흥미롭다. 진지한 표정의 보이스와 달리 사자상 입에 손을 넣고 찍은 워홀의 장난기가 보인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최고 절정기를 이룬 두 사람은 7살 차이로 보이스가 죽은 뒤 1년 만에 워홀도 세상을 떠났다.
앤디 워홀과 요셉보이스는 1979년 독일 한스마이어 갤러리(Hans Mayer, Düsseldorf)에서 열린 전시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둘의 만남에 대해 미국의 저술가인 데이비드 갤러웨이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아비뇽에서 두 명의 라이벌 교황이 마주한 것과 같은 의식적인 아우라’가 감돌았다고 했다. 유럽과 미국 예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접선하며 중요한 접점을 이룬 순간이라고 평가됐다.
두 사람은 1979년 10월 30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보이스 회고전을 비롯하여 그해 여러 차례 다시 만났다. 워홀이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사진을 촬영하고 있을 당시, 보이스도 사진 촬영을 위해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워홀은 자신의 폴라로이드 카메라(Polaroid Big Shot)를 사용해 펠트 모자와 낚시 조끼를 입은 보이스의 상징적인 모습을 담아냈고, 이이미지는 1980년부터 1986년 사이에 제작된 스크린 프린팅 초상화 연작의 근간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이다.
색을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사진을 찍어내는 워홀은 타인의 자기양식화(self-stylisation)를 포착해 냈다. 당시 초상화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진행했다. 사진의 네거티브 효과를 보다 극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색조를 반전시킨 작품은 '워홀 스타일'이 되었다.
이 전시에서 선보이는 '트라이얼 프루프(Trial Proof)', 라인 드로잉, 종이 작품에서 다이아몬드 가루를 활용한 작가의 초기 실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워홀은 이후 마릴린 먼로, 모나리자, 마오쩌둥 등 같은 주요 인물을 재현하는 연작 '리버설(Reversal)'을 지속했다. 원본 사진의 이미지를 단순화함으로써 인물을 상징적이고 아이콘스럽게 표현했고, 실크 스크린 프린팅 기법을 통해 직접적인 개입을 최소화했다. 이미지 자체보다 색상, 구성, 재료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변화를 꾀했다.
워홀은 생전 최종본을 위한 실험 작업인 '트라이얼 프루프'를 자신의 판화 에디션이나 회화를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작업군으로 여겼는데, 1980년대 워홀과 협력했던 출판업자 외르크 셸만도 이를 인정했다. "트라이얼 프루프를 워홀의 원화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워홀이 보이스를 현대 미술의 ‘살아 있는 전설’로 여겼던 것 같다”는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워홀과 보이스가 예술에 접근하는 미학적, 철학적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각자의 작품 전반에서 일상적인 사물과 이미지를 활용하고 더 나아가 낯설게 만든다는 점, 그리고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집념이 있다는 데서 교차한다"고 설명했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이번 워홀-보이스 전시는 로팍(64)대표에 감회가 깊다. 20대 시절 보이스 작업실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워홀 작업실 팩토리에서 일하기도 했다. 로팍 대표는 1983년 갤러리 개관전에 워홀 전시를 열고 싶었는데 당시 워홀은 자신보다는 젊은 작가의 전시를 여는 게 좋을 것이라며 추천서를 써줬다. 그렇게 만난 작가가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장-미셰 바스키아(1960∼1988)로, 타데우스 로팍 첫 전시로 문을 열었다.
한편 오스트리아에서 출발, 유럽 대표 갤러리로 성장한 타데우스 로팍은 지난 2021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서울점을 열었다. 서울 개관전은 독일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였다. 현재 타데우스 로팍의 서울 갤러리는 황규진 디렉터가 총괄 운영하고 있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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