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배우 김무열이 가정사를 공개했다.
김무열은 29일 tvN '유퀴즈 온더 블럭'에서 "아버지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나오고, 국회의원 보좌관을 오래 했다. 되게 엄한 분이었다"며 "어렸을 때 공부하길 바라서 '안양예고 가서 연기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못했다"고 털어놨다.
"내가 스무 살, 스물 한 살 무렵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혼자 계셔서 어떤 사고를 당한 지 모른다. 다친 채로 발견 돼 경찰차를 타고 병원까지 갔다. 아버지가 머리를 다 밀고 누워 있더라. 오랫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가 암이 발견됐다. 가족이 계속 수발을 해야 했는데, 병원에 실려가는 걸 반복했다. 내가 장남으로서 '강해져야 한다. 굳건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김무열은 "여전히 집이 어려워 산동네 판자촌에서 살 때였다. TV 드라마에 나오게 됐는데,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한테 '우리 아들이 나온다'고 얘기하고 다녔다고 하더라"면서 "내가 서른 초반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이번 영화(범죄도시4)가 성공하고 작년엔 아들도 보게 됐다"면서 "이제 아버지가 어디 가서 내 자랑을 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 안 계셔서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난다. 아들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어땠겠다'는 말을 하게 된다"며 눈물을 보였다.
김무열은 고등학교 입학 즈음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다며 "어머니가 상가 분양 관련 사기를 당했다. 여러가지 일이 겹쳐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 살던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쳐 빨간 딱지를 붙이기도 했다. 광명에서 대학로까지 버스, 전철을 타야 하는데 차비가 없었다. 어머니가 이웃에게 돈을 빌릴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성균관대 연기과에 입학했지만, "집안이 힘들어지다 보니 등록금 내는 일이 부담됐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돈이 많이 생기지 않느냐. 그런 게 부족한 시기였다 보니 학교를 휴학하고 알바를 계속 했다"고 덧붙였다.
"일용직, 휴대폰 공장, 각종 행사, 건물 경비 등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 (브라질 무술) 카포에라를 오래 했는데, 보디 페인팅을 한 채로 공연하면 수입이 짭짤했다. 배달 알바 하고, 개업하는 가게 전단, 볼펜도 많이 돌렸다. 신문 돌리고 찹쌀떡도 떼어다 팔았다. 일이 늦게 끝나고,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거리가 꽤 길었다. 나한테는 연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시간 동안 혼자 소리 내 노래하고 대사 치고, 사람 없는 공터, 산에 가서 연습했다. 현실에서 유일한 탈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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