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아 '오도라마 시티' 단독 개인전
경계 초월한 향 전파 후각 경험 확장
17일 오후 4시 개막식 개최
한스 울리히·정병국 위원장등 200명 참석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2024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올해는 향으로 유혹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환한 공간과 마주하게 한다. 텅 빈 것 같은 전시장 속 의식적으로 좁은 문으로 빨리듯 들어가면 그 순간 발길이 멈춰진다. 검은 아기 같기도한 형상이 하늘에서 살포시 내려오는 듯해 눈길을 잡아 끈다. 둥근 아치형의 작은 창문들이 반사하는 빛에 둘러싸인 형상은 2분마다 한번씩 코에서 연기(향)까지 내뿜어 그로데스크한 신비로움까지 조성한다.
이름은 ‘우스(Ousss)’. 한국관 단독 개인전을 연 구정아 세계관의 집합체로, 미지의 세계이자 불가사의한 우주인 동시에 물질이자 에너지다. 인간을 넘어선 몸짓으로 기묘한 감각을 전하는 '우스'는 1998년부터 작가의 작업에 등장했다.
하지만 향 뿜는 우스의 '2분 개인기'는 싱겁기 짝이 없다. 무엇인가 더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5분도 안돼 깨진다. "이게 다인가?"라며 돌아서는 관람객들은 모른다. 옷 자락에 향기가 따라 붙었다는 것을. 이 전시의 반전이다.
17일 오전 이탈리아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에서 개막한 2024 베니스비엔날레는 26개 국가관이 경쟁하며 펼치는 세계 최대 미술 올림픽이다.
본전시 주제와 걸맞게 현란하고 거창하고 복잡한 양상을 띄는 다른 국가관과 달리올해 한국관은 한산한 분위기로 시공간까지 초월한 상태를 보인다.
전시 때마다 길게 줄지어 오픈런을 보이는 영국관, 프랑스관 사이, 구석진 곳에 자리한 한국관은 "올해는 특히 볼게 없다"는 소문이 나고 있다.
오도라마시티(ODORAMA CITIES)를 주제로 한국인의 향을 모아 한국관을 향으로 물들인 구정아 작가는 이런 분위기에 꿀리지 않는 모습이다.
구정아는 1990년대 부터 향 설치작업을 해온 향 탐구자이기도 하다. 한국관 현장에서 만난 구정아는 "비엔날레 기간에 관람객들이 볼 전시가 너무 많으니 한국관에 와서는 조용하게 사색할 수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며 "굳이 작품을 이해하기보다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고 했다.
정치적 뉘앙스는 배제하고 은근하고 시적으로 접근한 '오도라마 시티'는 5가지 방식으로 전시장을 연출했다. 누구든 참여 가능한 오픈 콜로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에 대한 설문을 2023년 6월 25일부터 9월 30일까지 진행,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향을 매개로 전 세계 참여자들의 사연 약 600편을 수집하여 분석한 신작을 선보인다. 한국의 시대상을 담은 산, 햇살, 먼지, 겨울, 낙엽 등 17가지 향기와 함께 마스터 퍼뮤머 도미닉로피옹이 1개의 커머셜 향수도 개발해 논픽션에서 판매한다.
작가는 지난 7개월간 수십번 한국관을 방문하며 작은 코너 작은 지점까지 찾아보고 어떻게 향이 공간에 스며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향을 퍼뜨리는 디퓨저로 기능하는 조각, 전시장 바닥에 새긴 무한대 기호, 뫼비우스의 띠 형태로 구현된 두 개의 나무 설치 작품으로 물질과 비물질의 영역을 뛰어넘어 명확한 경계가 없는 어느 곳으로 ‘감각적 경험의 또 다른 확장’을 제시한다.
전시 제목의 ‘오도라마’는 향을 의미하는 ‘오도(odor)’에 드라마(drama)의 ‘라마(-rama)’를 결합한 단어로, ‘향’은 1996년 이래 구정아의 광범위한 작업 범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테마다.
후각과 시각의 공감각적 매체로 향을 주제로 내세운 이번 한국관은 그동안 좁고 어두웠던 이미지도 탈피했다. 피라미드 같은 유리 천장의 빛이 쏟아지면서 벽면에 칠해진 민트 색감으로 청량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이설희, 야콥 파브리시우스 예술감독은 해외 평론가 반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한국관은 전시가 다루기 쉽지 않은 건물인데 공간에 맞춰 연출을 잘한 것 같다"는 반응과 함께 "향을 다룬 지점이 흥미롭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두 예술감독은 특히, 1995년 한국관 개관 이래 첫 공동 예술감독으로 선정되어 주목 받아 왔다.
세계적 권위의 미술 잡지 프리즈(Freize), 아트리뷰(ArtReview), 아트아시아퍼시픽(ArtAsiaPacific), 아트 바젤 스토리(Art Basel Stories) 및 아트시(Artsy) 등은 이미 한국관 전시를 기사화했으며, 오큘라(Ocula), 아트넷(artnet), 아트리뷴(Artibune), 월 페이퍼(Wall Paper), 모노클(Monocle), 스테이인아트(stayinart), 미술 수첩(Bijutsu Techo),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an Morning Post) 등에서 구정아, 이설희, 야콥 파브리시우스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한국관 전시에 호평을 보내고 있다.
야콥 파브리시우스 예술감독은 "구정아 – 오도라마 시티'는 경계 없이 모든 곳에 산포, 이산하는 ‘향’의 속성은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든 만나는 이방인의 존재를 반추하게끔 할 것"이라며 "베니스비엔날레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 총감독이 기획한 국경과 경계를 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미술전 전체 주제인 'Stranieri Ovunque - Foreigners Everywhere'의 맥락과 닿아 있다"고 자부했다.
한편 이날 오후 4시에 개최한 한국관 개막식에는 국내외 미술계 인사 약 200여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이성호 대사, 외교부 관계자 및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등 국내 문화예술계 인사를 비롯, 세계적인 미술계 저명인사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서펜타인 갤러리 디렉터), 마야 호프만(루마 파운데이션 대표), 치아라 파리지(센트럴 퐁피두 디렉터), 클라우스 비센바흐(베를린 신국립미술관 디렉터), 크리스틴 불 안데르센(뉴 칼스버그 파운데이션 대표) 등이 참석했다.
특히, 이번 한국관 개막식은 2025년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앞두고 개최되는 해의 행사로 역대 미술전에서 한국관 커미셔너·예술감독을 역임한 송미숙, 박경미, 김홍희, 안소연, 주은지, 김승덕과 더불어 건축전 예술감독 조민석 뿐만 아니라 곽훈, 강익중, 김수자, 문경원, 전준호, 제인 진 카이젠 등 약 30여년 동안 한국관 개최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도 참석해 개막을 축하했다.
한국관 전시를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병국 위원장은 “600여편의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으로 시작된 이번 한국관 전시는 한국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향과 기억이 공간과 사유하는 깊은 인상을 오래도록 남기는 전시가 될 것”이라며, “한국관이 우리 미술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중요한 플랫폼이 되어 왔음을 더 확신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우리 미술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의 프리뷰를 거쳐서 오는 20일부터 공식 개막을 통해 일반 관람객들의 전시 관람이 시작된다. 이번 국제미술전은 11월 24일까지 약 7개월간 이어진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은 '이방인은 어디에나(Stranieri Ovunque – Foreigners Everywhere)'를 전시 주제다. 총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가 직접 큐레이팅하는 본 전시에는 전시 주제와 부합하게 해외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한국 작가 김윤신(아르헨티나)과 이강승(미국 LA) 및 작고 화가 이쾌대, 장우성까지 4명을 포함하여 총 330명의 작가 작품 수천 점이 전시됐다.
2024년 한국관 전시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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