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모공까지 보이는 가까운 곳에서 화려한 19세기 러시아 복장의 배우들이 춤을 추고 노래한다. 관객석에서 갑자기 말을 걸고, 하이파이브를 요청하기도 한다. 당황해 주춤거리던 관객들은 점차 극 속으로 깊게 빠져든다. 박수로 함께 음악을 만들고, 무대에 올라가 연기에 참여한다.
어디까지가 객석이고, 무대인 지 알 수 없는 이머시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이 3년만에 돌아왔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당시보다 관객과 배우의 경계가 더욱 옅어졌다.
입장과 동시에 붉은색 벨벳커튼과 화려한 샹들리에로 장식된 공연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니버설 아트센터의 붉은 인테리어를 활용해 1812년의 모스크바 오페라극장을 화려하게 구현했다. 무대와 좌석 배치도 독특하다. 무대 위 일부에 객석을 두고, 객석 일부는 무대로 꾸몄다. 객석 통로 역시 무대로 활용된다.
암전도 이뤄지기 전에 어디선가 배우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둘 나타난다. 무대와 객석을 돌아다니며 관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악수하고, 말을 걸기도 한다.
"자 보셨죠 프로그램북 / 이건 오페라야 / 등장인물 이름 정돈 외워둬 / 이따 졸지 않으려면(중략) / 원작은 악명 높은 러시아 소설 / 이름 외우다 집에 갈 걸 / 자, 함께 예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뤄지는 '성스루' 형식인 이 공연의 첫 넘버는 '프롤로그'.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복잡하게 얽힌 이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예습코너'다. 중독성 있고 반복되는 대사를 듣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나타샤는 어려(중략) / 소냐는 착해(중략) / 마리야는 엄해(중략) / 아나톨은 핫해 / 와인과 여인에 환장하지(중략) / 엘렌은 헤퍼 / 아나톨 누나 피에르 부인(중략) / 그 다음은 피에르 / 혼란스럽고 어정쩡한 / 돈은 많은데 안 행복한 /유부남 피에르 / 위기의 피에르 / 우리의 피에르"
'위대한 혜성'이라는 의미의 '그레이트 코멧'은 대문호 톨스토이의 대표작 '전쟁과 평화' 스토리를 기반으로 재창작한 이머시브 뮤지컬이다. 2012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였다.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겸 극작가 데이브 말로이의 작품으로, 극장 전체를 러시아의 펍으로 변신시킨 새로운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한국 공연은 이같은 구성에 국내 프로덕션만의 강점을 더했다.
공연 내내 팝, 일렉트로닉, 클래식, 힙합, 록 등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진 음악이 관객들의 흥을 돋운다.
김주택은 성악가의 탄탄한 발성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으로 다져진 연기력으로 부유한 귀족이지만 사회에서 겉돌며 우울과 회의감 속에 방황하는 피에르를 실감나게 연기한다. 고은성은 특유의 자신감 있는 몸짓과 여유 있는 연기로 거부할 수 없는 나쁜 남자 '아나톨'을 선보였다.
배우와 연주자, 스텝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연주자들은 연주와 함께 연기를, 주인공 피에르를 비롯해 대부분의 배우들은 연기와 함께 악기 연주를 소화한다.
김주택은 공연 내내 아코디언과 피아노를, 고은성은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여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무대 공연 내내 무대 한복판에 피에르와 함께 있다. 때로는 지휘를, 때로는 연주를, 때로는 춤을 춘다.
공연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은 단연 '관객'이다. 관객들은 공연 중간중간 박수로 음악을 만든다. 노망난 볼콘스키 공작에게 사랑고백과 함께 반지를 받기도 하고, 사랑의 편지를 전달하며 작품의 일부로 참여한다. 6월16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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