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판 위해 대파 인증샷 남겨"
색·번호 논란 넘어선 이례적인 현상
정치권이 논란 더 키웠다는 지적도
"다른 유권자에게 영향 줄 것" 비판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서울=뉴시스]김래현 문채현 수습 기자 = "그동안 현 정부에 관한 실망감이 쌓여 왔는데 얼마 전 대파 한 단에 875원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한 발언을 듣고 더는 못 참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판의 상징으로 대파를 들고 투표 인증 사진을 찍게 됐다."
부산진구에 사는 이승용(40)씨는 이른바 '대파 인증샷'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이유를 묻는 뉴시스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9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5~6일 이뤄진 4·10 총선 사전투표 현장에서는 야권 지지자들이 대파를 비롯해 대파 인형이나 대파 가방 등을 들고 인증 사진을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을 상기하려는 행위로 풀이된다.
과거에도 선거 때마다 특정 정당을 상징하는 색이나 번호를 포함한 인증 사진이 논란이 됐지만 대파와 같이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물건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자취하는 직장인 강모(29)씨는 "빨간색이나 파란색 옷을 입고 투표한 연예인들이 비난받고, 단순한 브이도 특정 정당을 상징하는 숫자로 몰려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정치가 과열됐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이제는 식재료인 대파까지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대파 관련 지침을 마련하고, 정치권이 이에 반응하며 논란을 더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선관위는 4·10 총선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5일 전국 시·군·구에 '투표소 항의성 민원 예상 사례별 안내사항'을 전달했다.
이 공문에는 '선거인이 정치적 표현물(대파 등)을 소지한 채 (사전)투표소 출입'하는 경우를 예시로 들어 '대파를 소지한 선거인에게 투표소 밖 적당한 장소에 대파를 보관한 뒤 투표소에 출입하도록 안내하라'고 적혀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칼틀막, 입틀막도 부족해 이제는 파틀막까지 한다'며 반발했고, 국민의힘은 선관위에 일제 샴푸나 초밥 도시락 등 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관한 물품을 투표소에 반입할 수 있냐고 질의했다.
전문가들은 대파 인증샷이 다른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인 만큼 존중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대파 소품을 만들어서 투표소 안까지 들어가는 건 정치를 희화화하는 것"이라며 "정치를 과열시킬 필요 없이 개인의 의사대로 투표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도 "선거법상 선거에 영향을 주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선거와 관련해 특정 후보를 상기하도록 하는 물건은 못 가져가게 돼 있다"며 "지금 대파처럼 노골적으로 어떤 물건을 투표소에 들고 가는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반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사회적으로 해악이 심하다면 금지해야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허용해 주는 게 맞다"며 "미국 같은 경우는 과거 오바마를 공산주의자처럼 합성한 사진도 돌고 벽에 그림을 그린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표현의 자유"라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대파를) 보면 반기겠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코웃음을 칠 것이기 때문에 큰 득은 안 될 행위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대파에 주목하지 않았다면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규제하면 규제할수록 더 커지고, 더 확산하고, 더 기발한 게 나온다"며 "제지를 안 했으면 알지도 못할 건데 오히려 장려가 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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