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에 일가족 잃은 제주 할머니 사연
"우리 할머니는 평생 고기를 못 드신다"
"가족이 물고기에 뜯겨 먹혔다는 생각 때문"
[서울=뉴시스] 이아름 리포터 = "나는 지금도 바닷물 찰랑찰랑 들이치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 연옥아'하고 두 팔 벌려 나한테 오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두 팔 벌려 바다로 들어갈 뻔했지."
4·3사건으로 8살 때 일가족을 모두 잃은 1942년생 김연옥 할머니는 제주 바다를 이렇게 묘사했다.
3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제주 할머니가 평생 생선을 입에 대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이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지난 2019년 열린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재조명됐다.
추념식에는 희생자 가족인 김연옥 할머니의 손녀 정향신씨가 참석했다. 추념식 단상에 오른 정씨는 "오늘은 4·3 유족이자 후유 장애인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하려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나는 할머니에 대해 몰랐던 게 많았다. 글을 쓸 줄 모르셨더라. 세뱃돈 봉투에 내 이름 세글자를 써줬던 2년 전(2017년)에 처음 알았다"며 "할머니 머리에 아기 주먹만한 움푹 파인 상처가 있다. 그게 4.3 후유 장애였다는 것도 작년(2018년) 4월에야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리고 10살 때까지 신발 한번 못 신어본 고아였다는 것도 믿기 힘들었다. 우리 할머니는 얼굴과 마음이 아주 고운 분이다"라며 "오늘은 검은색 저고리에 흰색 치마를 입으셨지만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항상 화사했다"고 했다.
또 "할머니는 혼자 바닷가에 자주 나가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바다를 참 좋아하시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며 "차마 믿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동생이 땅도 아닌 바다에 던져져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은. 당시 할머니는 고작 8살이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할머니는 고기(생선)를 안 드신다. 부모, 형제 모두 바다에 떠내려가 물고기에 다 뜯겨 먹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더라"며 "어릴 때부터 꾹 참고 멸치 하나조차 먹지 않았다는 사실도 나는 최근에 알았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누리꾼들은 "제주도 공항에 비행기가 오고 갈 때마다 그 아래 암매장된 뼈 소리가 덜거덕거리며 울부짖는 것 같다는 유가족 말도 생각난다", "4월 3일 하루라도 같이 슬퍼하고 분노하면 좋겠다", "가슴이 먹먹해서 눈물 난다" 등 슬퍼했다.
제주 4·3은 지난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 4.3 진상조사 보고서(2003)'에 따르면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심해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명시돼 있다. 1948년 당시 제주 인구 9분의 1 수준인 2만5000~3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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