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명동밥집 같은 사업이 잘되는 게 좋은 건 아닙니다. 빨리 이런 집이 문을 닫았으면 좋겠어요."
부활절을 앞두고 만난 '명동밥집' 센터장 백광진 신부는 의외의 말로 놀라게 했다. 문을 닫았으면 좋겠지만 코로나 때보다 인원이 늘어나는 상황에 안타까워했다.
"지난 2021년 1월 명동 밥집을 시작하면서 도시락을 나눠줄 때만 해도 하루에 300~400명 정도였는데, 코로나가 진행되면서 찾아갈 무료 급식소가 마땅히 없으니까 500명이 넘게 찾아왔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끝났는데 다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었어요."
실제로 지난 29일 찾아간 천주교 서울대교구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에는 황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따듯한 밥 한 끼를 기다리는 발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앞치마를 두르고 커다란 들통 앞에서 국을 끓이던 백광진 신부는 이날 인근 성당에서 준 삶은 달걀들도 준비해 노숙인들을 맞고 있었다.
"인근 성당에서 삶은 계란을 만들어줘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하하. 우리가 준비하려고 했는데 다른 성당에서 직접 다 삶아서 3개씩 넣어서 가져다줬어요, 최근 경기가 어려워도 많은 도움을 주시는 손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지난 2021년 문을 연 명동밥집은 노숙인과 홀몸노인을 위한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운영 초기에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어려움 속에서 가장 크게 피해를 던 사람들 특히 쪽방촌 사람들이나 노숙인들, 정말 따뜻한 한 끼 식사조차 어려운 사람들의 이용이 많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면서 홀몸노인이나, 실직자 등 다양한 계층의 이용자가 늘고 있다.
코로나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나고 인원이 750명 정도 수준이었다가 현재 일요일과 평일도 900명 넘게 명동밥집을 찾고 있다. 명동밥집은 매주 수, 금, 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배식을 하고 있다.
4년 전 명동밥집 센터장을 맡게 된 백 신부는 "처음 명동밥집을 맡았을 때는 기대와 설렘과 동시에 큰 책임감을 느꼈다"며 "특히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따뜻한 식사와 위로를 전달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경기 침체로 명동밥집은 자원봉사자와 기부가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온라인 봉사활동 모집을 확대하고, 후원금 모금 캠페인을 진행하며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 다양한 기업과 단체, 개인 후원자들이 쌀이나 식재료를 보내줘 운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십시일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 다들 힘드니까 모두가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서 나눠주니까 밥 한 공기가 되더라고요. 부활절을 맞으면 진정으로 기뻐야 하는 데 진정한 기쁨을 느끼려면 아픈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보듬을 때, 그 고통을 함께 나누어서 질 때 부활절이 의미가 있습니다."
백 신부는 명동밥집을 꾸준히 운영하게 된 공을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에게 돌렸다.
"고액 기부자들도 힘이 되지만 그분들의 기부는 일희성이라서 그보다는 소액이라도 꾸준하게 기부해 주신 분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지금도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기부해 주신 분들이 있어 그분들이 이 밥집이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자원봉사자들도 굉장히 많아져서 1500명 정도 된다"며 "그중 명동밥집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도 봉사해 주는 분도 있지만 많이 바뀌면 새로 교육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데 꾸준히 봉사하시는 분들 있어 힘이 된다'고 기부자들과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명동밥집은 현재 노숙인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곳만이 아니라,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는 공간도 되고 있다.
건강검진, 이·미용 서비스, 장수사진 촬영, 정신건강을 위한 상담 등 다양한 자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자활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백 신부는 한 끼를 먹으려고 찾아오는 인원이 점점 늘어나는 명동밥집에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우리 사회가 나눔을 많이 해서 명동밥집이 문을 닫을 정도로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길 바라기 때문이다.
"인원이 느는 거 솔직하게 좀 달갑진 않아요, 우리 사회가 안 좋아졌다는 얘기잖아요. 나눔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이곳을 찾는 인원이 줄고 내가 안고 가야 할 사람들이 분산됐으면 좋겠어요, 이 집이 커질 게 아니라 점점 작아져서 자기 집에서 식사하듯 편안하게 와서 얘기하면서 밥 먹고 갈 수 있는 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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