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또 다시 역대 최대다. 초·중·고 사교육비 이야기다. 지난해 총액은 27조1000억원. 전년도와 견줘 1조1000억원 늘었다. 상승률은 4.5%로 지난해 물가상승률(3.6%)을 웃돌았다.
이주호 부총리가 이끄는 교육부는 사교육비를 잡겠다고 공언했다. 국회에 낸 올해 예산안 부속서류에서 사교육비 총액을 1조8000억원(6.9%) 줄이겠다고 했다. 고물가 행진 속에서 애초 무리해 보인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증가 폭을 물가상승률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이마저도 실패했다.
사교육비 관리는 이 부총리의 세일즈 포인트다. 이 부총리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맡던 2010~2013년 사교육비 총액을 줄여본 주인공이다. 교육부가 무리한 목표를 부른 것은 이 부총리의 '나는 해 봤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내년엔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방과 후 학교'를 확대하는 초등 늘봄학교의 전국 확산과 대학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 배제 및 EBS 중학 강의 무료화 조치가 제 효과를 내려면 시차가 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허나 사교육에 대한 근본적 대책인지는 의문이 있다. 단기적인 대증 요법만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애초 사교육 부담이 큰 이유는 계층 사다리를 오르기 위한 경쟁인데 과잉경쟁에 대한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의 사교육비 조사엔 사교육을 받은 주된 이유를 2개 고르라는 문항이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83.4%가 '학교수업 보충', 40.3% '선행학습', 23.8%는 '진학준비'라고 답했다. 통계 작성 이래 항상 1~3위로 꼽히는 이유들이다.
조금 더 현실적인 표현을 써 보겠다. 대학 진학률이 높은 특수목적고나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를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더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한다. 이번 조사에서 자사고 지망 중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일반고의 1.75배였다. 과학고·영재학교는 1.64배, 국제외국어고는 1.5배였다.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이를 뺐다.
'아실'이라 불리는 앱이 있다. 학군비교 기능이 있다. 학교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보통학력 이상 비율과 특목고 진학률(중학교) 또는 대학교 진학률(고등학교)로 분석해 '학교별 질'을 분석해서 보여주는 기능이다.
올해 1학기 늘봄학교 2741곳 중 강남·서초 지역 초등학교는 단 1곳이다. 전문가들은 대치동 학부모들이 아까운 것은 시간이지 돈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사교육 유형은 기초학력 보충, 예체능 그리고 경쟁 우위형"이라며 "경쟁 우위형 사교육은 없앨 수 없고 소득에 비례해 상승하게 돼 있다"고 했다.
비교육적인 일이다. 현실이기도 하다. 교육부의 최근 행보를 보면 '기본'에 대한 고민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사교육을 부추기는 원인은 불안감이다. 지난해 말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이 나왔고, 서울 주요 대학의 반도체 학과 정원이 늘었다. 올해는 의대 2000명 증원과 무전공 정원 확대가 추진된다. 대입 사전예고제가 무력화됐다는 말이 나온다.
의대에 가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미적분을 배우고, 사회초년생들이 직장을 관두고 10년 전 봤던 수능을 다시 치르겠다고 나선다.
적당한 경쟁은 사회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이건 너무 과하지 않나.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은 25일 정례브리핑에서 "단기 대책이 있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고만 답했다. 총선을 앞둔 거대 양당에서도 경쟁교육에 대한 진단이 없다. 녹색정의당 정도나 "국가책임 돌봄, 대학 평준화로 사교육비 경감"을 지적한다.
과도한 경쟁에 대한 처방 없이는 '이제는 지방시대'도 공허한 구호다. 챗GPT가 등장한 시대에 30년 된 낡아 빠진 오지선다형 문제에 매달리고, 전 국민이 그 결과를 두고 공정성을 따져 묻는 것도 지긋지긋한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라는 조직이 있다. 대입 제도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렁이는 건 막자는 여론에 힘입어 생긴 기구다. 올해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을 내놓는다. 이 자리에서 경쟁 교육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공개적으로 논의해보는 것은 어떻겠나. 이주호 부총리도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경쟁 문화에 대한 화두를 던져볼 순 있다.
이런 게 효과는 없어도 적어도 공론장에서 과도한 경쟁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지금보단 낫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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