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들 총기 난사 뒤 불 지르고 도주
140여명 사상…불길 안 잡혀 희생자 늘듯
IS 책임 주장…러 정치인들 우크라 의심
[모스크바=AP/뉴시스] 강영진 기자 = 몇 몇 폭도들이 22일(현지시각) 모스크바의 공연장에 침입해 청중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해 최소 40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부상했으며 극장에 불을 질렀다. 공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극도로 통제된 선거에서 압승해 정권을 굳힌 뒤 며칠 만에 발생했다.
이슬람국가(IS)가 자체 소셜 미디어 채널에 올린 성명에서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공격 현장 상황이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엄청난 비극”을 당국이 테러사건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연장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지붕이 내려앉은 이번 사건은 러시아에서 몇 년 새 발생한 최악의 사건이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년 차에 발생했다.
러시아 대통령궁은 푸틴 대통령이 6200명까지 수용하는 모스크바 서쪽 대규모 공연장인 크로쿠스 시청 공격이 발생한 직후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공격은 청중들이 인기 록밴드 피크닉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든 상태에서 발생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이 40명 이상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밝혔으며 일부 러시아 매체들은 폭도들이 폭탄을 투척해 발생한 불길에서 더 많은 청중들이 빠져 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도했다. 보건 당국은 145명의 부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이들 중 어린이 5명을 포함, 115명이 입원했다.
밖에서 찍은 동영상에 건물이 불길에 싸여 있고 커다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모습이 보인다. 거리에는 수십 대의 소방차, 앰뷸런스 등 비상 차량들이 경광등을 번쩍이고 있고 소방 헬기 여러 대가 공중에서 물을 뿌리고 있으나 불길이 몇 시간 동안 잡히지 않고 있다.
검찰은 전쟁에 지친 몇 사람들이 공연장에 진입해 청중들을 향해 발포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매체들이 텔레그램에 올린 동영상에서 총성이 연거푸 울리는 것이 들린다. 한 동영상에는 소총을 든 두 남자가 공연장 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포착됐다. 공연장 객석에서 한 남자가 총성이 계속 울리는 속에서 공격자들이 불을 질렀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도 있다.
공격 소총을 들고 모자를 쓴 4명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향해 조준 사격을 하는 모습의 동영상도 있다.
러시아 매체들은 극장 경비원들이 무장하지 않았으며 공격 초기에 살해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매체들은 공격자들이 특수부대와 경찰이 도착하기 전 도주했다고 전했다. 경찰이 공격자들이 타고 도주한 차량들을 추적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이달 초 러시아 최고 보안 기관이 모스크바의 유대인 회당에 대한 IS의 공격을 저지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은 또 코카서스 지방 인구세티아에서 6명의 IS 조직원들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주로 시리아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IS가 이번 러시아 공격을 시도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몇 년 동안 IS는 전 소련 공화국들에서 시리아 및 이라크 전투원들을 모집해왔으며 코카서스 등지에 대한 몇 차례의 공격이 자신들 소행이라고 밝혀왔다.
전 세계 곳곳에서 분노와 충격, 위로를 밝히는 성명이 발표됐다.
일부 러시아 소셜 미디어 매체는 반정부 인사들을 철저하게 탄압해온 러시아 당국이 어떻게 사건을 막지 못했느냐며 비난했다.
러시아 당국자들은 모스크바 공항, 기차역, 수도의 광대한 지하철망에 대한 보안이 강화됐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시장이 주말 동안 모든 집회와 극장, 박물관을 폐쇄했다. 러시아 다른 지역의 보안도 강화됐다.
러시아 대통령 실은 이번 공격이 누구 소행인지를 즉각 밝히지 않고 있으나 일부 러시아 의원들이 재빨리 우크라이나를 지목하고 나서면서 공격을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공격이 있기 몇 시간 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전력 시설을 대규모로 공격해 최대 수력발전소 등 에너지 시설들이 파괴되면서 100만 명 이상이 정전을 겪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보위원회 부위원장은 우크라이나가 공연장 공격에 관여한 것이 확인되면 “우크라이나 당국자를 포함해 관련자 모두를 무자비하게 추적해 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하일로 포돌략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우크라이나가 공격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는 X에 올린 글에서 “우크라이나는 절대 테러 수단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번 전쟁의 모든 것이 전장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존 커비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한다면서 “동영상이 끔찍하며 지켜보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 끔찍한 총기 공격의 피해자들을 추모할 것이다.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한 어머니들, 아버지들, 형제들, 자매들, 아들들, 딸들이 있다. 힘든 하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모스크바 주재 미 대사관은 지난 7일 극단주의자들의 공연 등 대규모 집회장 공격이 “임박했다”며 모스크바의 미국인들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피하도록 경고했다.
커비 대변인은 대사관의 경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국무부에 문의하라면서 “경고가 이번 공격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번 공격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커비 대변인은 “이 끔찍한 공격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주 초 서방의 경고가 러시아인들을 겁주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모두 공개적 공갈로 보이며 우리 사회를 겁주고 흔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서는 체첸 분리주의자들과 전쟁을 치르던 2000년대 초 여러 건의 대규모 테러 공격이 발생했다.
2002년 10월 체첸 전투원들이 모스크바 극장 청중 800명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틀 뒤 러시아 특수부대가 진입했고 인질 129명과 체첸 전투원 41명이 러시아군이 살포한 마약 성분의 가스에 의해 숨졌다.
2004년 9월에도 약 30명의 체첸 반군들이 러시아 남부 베슬란의 학교를 점령하고 수백 명을 인질로 잡았다. 이 사건은 이틀 뒤 330명 이상이 숨지는 참극으로 끝났다. 숨진 사람의 절반 정도가 어린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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