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승주 수습 기자 = "내려다보며 노니 단정한 숯기와가 연이었고 멀리 바라보니 눈앞이 탁 트이는 도다. 봄가을 좋은 날 좋은 시절 이렇게 돌아오니 어찌 날마다 감상하지 아니하리오"(숙종 취운정제영시(翠雲亭題詠詩))
숙종의 글처럼 창덕궁의 낙선재는 '눈앞이 탁 트이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꽃샘추위 속 낙선재에 봄이 먼저 찾아왔다. 산수유, 진달래꽃,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 향기를 전한다.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던 낙선재 뒤뜰 후원도 활짝 열려 '봄꽃'을 맞이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22일 연 '봄을 품은 낙선재' 행사는 그야말로 봄 기운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참가자 20명은 모두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낙선재 뒤뜰에 발을 들였다. 꽃을 심어 놓은 계단을 오를 때면 달큰한 매화꽃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동안 은밀한 공간에서 조용히 살아온 잔디밭도 싱싱함을 뽐냈다. 노란색, 흰색 쌀 알 같은 이름 모를 꽃들과 함께 진한 풀 냄새를 풍겼다.
검소하지만 아름다운 '낙선재'
창덕궁 낙선재는 조선 24대 왕 헌종의 서재 겸 휴식을 취했던 주거 공간이다.
단청을 칠하지 않았지만 낙선재 일원을 구성하는 담벼락과 문창살, 난간은 다양한 문양을 포함하고 있어 화려함을 더했다.
낙선재 일원 뒷마당의 문 옆에 있는 포도덩굴 문양은 다산을 상징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를 하고 있다.
바로 반대편에는 아래서 위로 솟는 매화 문양이 있다. 겨울에 죽은 것처럼 보여도 봄에 다시 피어나는 매화는 장수를 상징한다.
활짝 열린 낙선재 뒤 뜰 후원 상량정
낙선재 일원은 담으로 구분되어 독립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담의 문을 열면 전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특징이 있다.
정자가 있는 후원에 오르자 유기성은 더 돋보였다. 이번 프로그램에 개방된 구역은 낙선재의 뒤 뜰 후원 상량정이다.
'시원한 곳에 오르다'라는 뜻의 '상량'은 높은 곳에 자리한 상량정에서는 창덕궁 낙선재의 전경을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다.
상량정에 오르자 담벼락에 동그란 원 모양으로 뚫린 만월문이 반겼다.
이날 상량정은 굳게 닫힌 창호문을 열고 내부 천장까지 공개됐다. 천장에는 부처님 손가락을 닮았다는 불수감과 복숭아, 복을 상징하는 박쥐와 학무늬가 새겨져 있다.
해설사는 "왕실 천장이 학무늬로 장식된 게 거의 유일하다시피 할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승화루 담장에는 창경궁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숨겨져 있다. 문을 열면 창경궁 통명전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동쪽으로 이동해 취운정에 가서는 더 가까이서 창경궁 전경을 볼 수 있다.
취운정은 정자임에도 특이하게 온돌이 설치돼 있다. 숙종이 이곳에 애정을 갖고 자주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참가자들 "궁에서 맞는 봄 기운 너무 좋아"
30대 여성 관람객은 "엄마랑 함께 오고 싶었지만 표를 하나밖에 구할 수 없었다"며 "작년에는 실패했다가 올해 처음 성공했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연차를 쓰고 올라왔다는 남성 참여자도 "예매하는 서버가 다운됐었다"고 전했다. 그래도 "지난주에 궁궐 보러 왔었는데 4월 초에 다시 한번 보러 와야 할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봄을 품은 낙선재' 행사는 오는 28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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