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션계약 고민하다 암진단 후 의사번복
"계약금 1000만원 돌려달라" 소송냈지만
계약서 없어도 계약성립…"반환의무없어"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부동산 관련 정식 계약서 작성 이전 일종의 의사를 밝히려는 명목으로 건네는 가계약금.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이 돈, 건넨지 하루 만에 계약의사를 번복했다면 돌려받을 수 있을까.
경상도 일대에서 펜션 운영을 고민하던 A씨는 2021년 11월 부동산을 통해 경북 영덕군 소재 한 펜션 매물을 소개받게 됐다.
보증금 1억5000만원, 연차임 8000만원의 임차 조건을 확인한 A씨. 배우자를 보내 2021년 12월3일께 펜션 위치와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같은 날 부동산으로부터 펜션을 보유한 B씨의 계좌번호를 전달받았다.
임차 조건이 괜찮다고 생각한 A씨는 계약을 위한 행동에 나섰다. 임장 후 하루 만인 다음 날 B씨의 계좌번호로 계약금 명목의 1000만원을 이체했다.
당시 A씨의 계좌내역에는 1000만원 송금과 함께 출금기록으로 '펜션계약금', 입금기록으로 A씨의 이름과 함께 '계약금'이라는 기록이 각각 표기됐다.
계약금 송금 후 A씨와 B씨는 3일 후인 12월7일 오후 5시 영덕군 일대에서 만나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당시 펜션에 거주 중이던 B씨 역시 A씨에게 펜션을 인도하기 위한 또 다른 임대차계약을 맺고 1000만원을 계약금으로 지급했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계약금 이체 하루 뒤인 12월5일 A씨는 돌연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펜션을 운영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A씨는 부동산을 통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계약서를 아직 작성하지 않았기에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 줄 알았던 A씨는 사정이 여의치 않자 결국 "가계약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항소심까지 올라간 사건을 심리한 전주지법 민사1부는 지난 1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황상 이 사건 계약과 관련해 의사 합치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임대차계약의 경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부동산 사용·수익을 약정하고, 임차인이 대가를 지급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효력이 생기는 '낙성계약'이라고 짚었다. 계약 성립에 임대차계약서보다 앞서 당사자 합의만으로 의사합치가 됐다고 볼 수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A씨 측이 부동산을 방문해 직접 상태를 확인했고 보증금과 연 차임에 대한 구체적인 의사 합치가 이뤄진 후에 계약금을 지급한 정황을 살펴 양측이 펜션 인도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약서 작성 이전이라도 원·피고 사이 계약 관련 중요 사항에 관해 구체적인 의사 합치가 있거나 적어도 장래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 등에 관한 합의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계약 당시 금전을 계약금 등 명목으로 교부한 때에는 다른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며 "원고가 지급한 1000만원에 관한 다른 약정이 있다고 볼 사정이 없기에 이 금액은 해약금으로 추정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원고는 1000만원을 포기함으로써 임대차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며 "피고는 이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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