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한재혁 기자 =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해 현재 사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들은 했다고 생각하지만 근본적으론 법관의 수가 부족하다."
지난달 15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 후 첫 간담회에서 말한 내용이다. 신숙희·엄상필 대법관들도 최근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법관 증원의 절실함을 강조했다. 정치권의 재판 지연 문제 지적에 대한 답이었다.
실제로 일선 법관들이 처한 현실은 가혹하다. 2020년 기준 전체사건 수는 10년 전에 비해 7.4% 증가했지만, 3000명 남짓한 판사 정원은 여전히 제자리에 맴돌고 있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법관 한 명이 감당해야 하는 사건의 수는 독일의 4.8배, 일본의 약 2.8배, 프랑스의 약 2.2배에 달한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법관들은 물리적으로 사건 처리에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판사들의 업무 부담이 질병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갑자기 세상을 떠난 한 고법판사도 야근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는 저녁 식사 후 숨을 거둔 그날도 사무실에 복귀해 업무를 이어갈 예정이었다.
참담한 현황 속에서 조희대 사법부는 '재판 지연 해결'이라는 숙제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재판부 변동으로 인한 지연을 막기 위해 재판장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법원장 재판부'를 신설을 공언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을 필두로 서울고법과 서울행정법원, 서울가정법원까지 올해부터 법원장이 직접 재판을 심리하겠다고 발표했다. 말 그대로 사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영끌'하는 모습이다.
법원 안팎에서는 사법부가 재판 지연 문제 해결을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단 평가도 나온다. 이 총력전도 결국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 사법부 인사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꼽는 법관 증원은 애초에 사법부가 권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할 키를 손에 쥔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 2022년 12월 발의된 이른바 '판사증원법'(판사정원법 개정안)은 여야의 무한 갈등 속에 여전히 방치된 상태임에도 말이다. 여당의 검사 동시 증원 주장과 야당의 격한 반대만이 원론적으로 반복될 뿐이다.
총선 후 임시국회서 처리될 가능성도 낮아보인다. 5월말 21대 국회가 끝나면 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현 국회 내에 통과가 되지 않으면 기획재정부와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던 조 대법원장의 우려는 이제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방관자'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선 국회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양당의 적대정치가 만연해지기 이전, 이미 국회에선 이미 6차례나 법관증원법이 여야의 의견 합치 속에 통과된 바 있다.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여야 정치권이 총선 이후 지혜를 모아 대승적인 결단을 해야할 때다. 법관의 사명감에만 기대는 것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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