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이효섭 자본연 실장 주제발표
"연기금 동참, 밸류업 우수 기업 투자 수요 확충할 것"
[서울=뉴시스]우연수 기자 = "일본의 사례를 보면, 10년에 걸친 기업 가치 제고 노력이 저(低) 주가순자산비율(PBR) 종목들의 초과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았다. 단순히 저 PBR 종목에 투자한다는 전략은 미래 초과수익률을 얻는데 적합하지 않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26일 오전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서 "저PBR 테마주 투자는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며 "밸류업 방안은 단기 주가 부양이 절대 목표가 아니며 긴 호흡에서 한국 증시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시발점임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당국, 유관기관과 함께 밸류업 정책을 연구해온 그는 이날 주제발표를 통해 기업 가치 제고 관련 해외 사례를 분석하고 시사점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 정책은 일본이 지난해 실시한 상장기업 가치 제고 노력에서 상당 부분 벤치마킹했다.
이 실장은 "일본에서 2022년 12월 말 PBR이 1배 미만이던 프라임 기업들의 13개월 후 지수 대비 평균 초과수익률을 보니 마이너스(-1.9%)로 부진했다"며 "(기업 가치 제고 정책이)저PBR주가 초과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수요 기반 확충을 위한 지수를 개발할 때도 일본은 과거 2분기 평균 시점 PBR이 1을 넘는 기업을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밸류업 정책 발표 직후 시장에서 '저PBR주'들이 정책 수혜 테마주로 떠오른 것을 경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실장은 "자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단기 주가 부양이 아닌 중장기 성장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단순히 PBR,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지표만 고집하기보다 기업에 적합한 다양한 투자지표, 수익 지표를 고려해 중장기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공개한 모범사례에 따르면 일본 시총 64위의 식료품 회사 아지노모토는 단순히 PBR, ROE뿐 아니라 사업부문별 가중평균자본비용(WACC), 투하자본이익률(ROIC)로 회사를 진단하고 2030년까지 장기적인 계획을 제시했다. 기업 특성에 맞는 투자지표로 진단한 뒤 제 몸에 맞는 기업 가치 제고 방안을 내놓은 사례로 꼽힌다.
아울러 그는 이번 밸류언 지원 방안이 일본 정책과 가장 다른 부분이 스튜어드십 코드 반영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위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우수 상장사들에게 연기금 자금이 유입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의 스튜어드십 코드 반영을 추진한다.
이 실장은 "자율적 공시라고 했는데 강행 규정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바로 스튜어드십 코드 반영"이라며 "연기금 등이 동참한다면 탈석탄 정책과 비슷하게 연기금 위탁운용사들은 기업 가치 제고 공시를 한 기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이는 밸류업 우수 기업에 대한 투자 수요를 크게 확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일본은 공적연금과 일본 중앙은행이 거버넌스 개혁에 동참하며 국내 주식 보유를 큰 폭 확대해온 점이 일본 주가 상승을 견인하는데 큰 힘이 됐고, 한국도 이를 적극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이날 발표자들과 토론 참석자들은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적절한 인센티브와 이사회의 권한·책임 강화, 기관 투자자의 관여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더 열심히 하겠지만 저평가 중견 이하 기업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며 "자사주, 배당 등에 대한 강력한 세제 혜택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PBR이 높은 기업에 대해 상속·증여세를 감면해주는 전향적인 방향을 찾으면 어떨까 싶다"면서 "또 민간투자자는 상당히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세제 등 혜택을 통해 장기 보유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투자 수요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투자자 대표로 참석한 이동섭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실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해선 권한과 책임이 있는 이사회가 직접 관여해야 한다"며 "등기임원들의 보수가 성과와 연계되는지가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이미 기업과의 대화를 통해 기업 가치 제고 노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실제 회사 성과와 경영진의 보상이 연계되고 있는지, 이런 부분도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이효섭 실장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상장 기업 임원의 성과 보수와 재무 성과의 관련성을 공시하도록 하고, 고의로 높은 성과 보수 수치를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하면 임원 성과 보수를 환수하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상장사들의 우려와 부담을 선제적으로 해소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주제 발표를 맡은 김춘 한국상장사협의회 본부장은 "일본 IR 협의회에서 지난해 5~6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 가치 제고 대상 기업들은 '미래 불확실성 등 계획 미달성 리스크'를 가장 크게 우려했다"며 "실질적 유인책도 필요하지만 기업의 우려사항을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해소해줄 필요도 있다"고 발표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장·업종별로 모든 상장사들의 투자지표를 공표한다고 했는데 코스닥의 경우엔 중소벤처기업인 경우도 다수라 모험자본적 성격이 강하다"며 "시장·업종별뿐 아니라 기업 규모나 성격에 따른 차별적인 비교 공시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또 "이사회 중심으로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이행해야 한다는 의견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책임을 많이 추궁하게 되면 이사가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꼭 고려해야 한다"며 "계획 변경시 추가 공시, 사후 점검 및 평가 등 과정에서 이사 책임이 가중될 소지가 있어 추후 보완해주시길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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