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관장'에서 '행복한 관장'까지…윤범모 '현대미술관장의 수첩'

기사등록 2024/02/06 11:14:45

최종수정 2024/02/06 11:22:26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대한민국 유일의 국가 미술관이다. 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 청주관의 4관 체제이기는 하나 국립박물관의 13개 분관 체제와 비교하면, 정말 갈 길은 멀다. 단 하나밖에 없는 국가 미술관, 하지만 소장품 숫자는 대외적으로 밝히기가 부끄러울 정도라 할 수 있다. 소장품 8500점 수준일 때, 언제 1만 점 시대에 진입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건희컬렉션 1500점이 한꺼번에 들어 왔다."‘소장품 1만 점 시대의 진입!’ 그것도 단숨에 1만 점을 돌파하는 행운을 잡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윤범모 전 관장의 이야기다. 그가 미술관 재임시절 이야기를 총망라한 책 '현대미술관의 수첩'을 출간했다. 2019년 2월부터 2023년 4월까지 관장직에 재임하던 시절의 업적과 취임부터 퇴임의 비사까지 5년 간의 회고를 담았다.

"미술관 소장품 1만점 돌파라는 사건도 획기적인데, 그것도 이건희컬렉션으로 소장품 가치를 드높였으니, 이 무슨 행복일까. 그래서 그런지 주위의 지인들은 나를 ‘행복 관장’이라고 부른다. 행복한 관장. 미술관에 즐거운 일이 자꾸 생기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 정말 미술관에 좋은 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제1호 큐레이터로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된 저자는 '좌파 관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그 어느 관장들보다 '행복한 관장'이었다. 이건희 컬렉션이 넝쿨째 들어오고, 코로나 역병의 시대 오히려 미술한류를 실천한 미술관(장)의 대표사례로 손꼽힌다. 또한 '다다익선'의 재가동, 다양한 해외전시, 이건희컬렉션 수증, 코로나 중 '세계 10대 온라인 뮤지엄'으로 선정 등이 윤범모 전 관장 임기중에 일어났다.

코로나라는 미술관으로서는 비극적 상황에서도 최대치의 업적을 이끌어 낸 것은 관장 개인의 치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후대를 위한 모범사례로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미술한류'를 타고 MZ세대가 미술관에 들어오면서 방탄소년단 'RM 효과'도 체험했다.

"나는 RM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상설전에서 처음 만났다. 누군가는 말했다. 두 가지의 미술전시가 있는데 RM이 본 전시와 그렇지 않은 전시라고. 전시장에서 만난 RM은 나에게 손상기 화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웬 손상기? 나는 놀랐다. 그는 물었다. “관장님이 굴레방다리의 손상기 화실을 찾아 가셨잖아요.” 그렇다. 나는 무명시절의 손상기와 가깝게 지냈고, 그의 작가적 성장과정을 지켜봤다. '공작도시'와 '시들지 않는 꽃' 같은 연작은 울림이 큰 작품이었다. 더 이상 시들 것도 없어 더 이상 버림받을 것도 없다는 시든 꽃, 바로 꼽추 화가의 자화상이었다. 개성적 예술세계와 극적인 삶을 살다 요절한 화가 손상기. RM은 손상기를 주목했고 문학적 서정성을 기반으로 한 그의 작품을 공부하며 또 자신의 집에 그의 작품을 걸어놓고 음미하고 있다. RM의 미술에 대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은 수준급 이상이다."

근현대미술평론가로 윤범모 전 관장은 우리 미술에 관한 강한 애착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채색화에 대한 재해석이다. 특히 민화라는 명칭의 오류를 바로잡고 우리 미술의 전통을 찾고 전통을 현대화 하는 문제, 즉 법고창신의 정신을 새로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미술한류의 시대를 맞고 있다. 한국미술의 국제 경쟁력을 염두에 둘 때, 채색화 분야의 경쟁력을 꼽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른바 민화계의 새로운 각오를 촉구하게 한다. 야나기 산맥의 극복은 필수조건이다. 민화계의 모사와 창작의 영역 구분의 철저, 이 부분은 스타 작가를 양성하기 위해서도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훌륭한 작가는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무장되어야 하고,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제 민화계의 경쟁 상대는 민화계 내부가 아니다. 일반 미술계를 경쟁 상대로 두어야 하고, 이는 좀 더 발전하여 국제 미술계를 경쟁 상대로 두어야 한다. (중략) 하지만 채색화의 빛나는 전통과 엄청난 숫자의 민화인구는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본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구체적이면서 실행 가능성 있는 방법론을 내세우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것의 단초는 우선 투철한 작가정신에서 출발할 것이다. 미술한류 시대. 나는 채색화의 경쟁력을 신뢰하면서 민화계의 새로운 바람을 기대한다.”(340~341쪽)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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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관장'에서 '행복한 관장'까지…윤범모 '현대미술관장의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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