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튀르키예]강진 후 1년…"중요한 건 함께 슬픔을 이겨나가는 것"

기사등록 2024/02/06 05:00:00

최종수정 2024/02/06 06:21:29

대지진 1년 앞두고 튀르키예 남부·남동부 방문

이재민들, 웃어 보이며 "긍정을 퍼트려 봐" 외쳐

"중요한 건 함께 슬픔을 이겨나가는 것" 강조도

다만 낡은 옷차림서 힘겨운 일상생활 가늠케 해

정부, 민간과 협력해 임시 컨테이너 정착촌 조성

내부엔 교육·체육·의료·상업 등 필수 시설 위치

이재민 위한 영구주택 건설에도 박차 가하는 중

[카흐라만마라슈=뉴시스] 김명년 기자 = 5일 오후(현지시간) 방문한 카흐라만마라슈 엘비스탄에 조성된 무시아드 엘비스탄 컨테이너 임시 정착촌. 이 곳에 사는 아이들이 드론 카메라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다. 2024.02.05. km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카흐라만마라슈=뉴시스] 김명년 기자 = 5일 오후(현지시간) 방문한 카흐라만마라슈 엘비스탄에 조성된 무시아드 엘비스탄 컨테이너 임시 정착촌. 이 곳에 사는 아이들이 드론 카메라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다. 2024.02.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엘비스탄=뉴시스]홍연우 기자 =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우리 모두는 서로가 지진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 슬프다는 걸 알고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슬픔을 함께 이겨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오전 찾은 카흐라만마라슈 엘비스탄에 조성된 무시아드 엘비스탄 컨테이너 임시 정착촌에서 일하는 하티제(22)의 말이다. 엘비스탄 출신인 하티제는 구호 단체 인터내셔널 블루 크로스(International Blue Cross) 소속으로, 지진 후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이재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2월6일 오전 4시17분(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부 가지안테프에서 약 33㎞ 떨어진 내륙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했다. 피해 상황이 수습되기도 전인 같은 날 오후 1시24분 규모 7.5의 여진이 카흐라만마라슈주(州) 북북동쪽 59㎞에서 발생했다.

최악의 지진 피해로부터 1년 뒤 상처를 딛고 복구와 재건에 여념이 없는 카흐라만마라슈 엘비스탄을 뉴시스를 비롯한 국제 기자단이 찾았다.

이 임시 정착촌엔 약 8000명의 이재민이 살고 있는데, 이 중 아동 인구 비율은 30%에 달한다. 하티제와 17명의 동료는 이곳에서 아동·여성을 위한 심리적·신체적 지원 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슈=뉴시스] 김명년 기자 = 5일 오후(현지시간) 만난 카흐라만마라슈 엘비스탄에 조성된 무시아드 엘비스탄 컨테이너 임시 정착촌에서 일하는 하티제(22). 하티제는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우리 모두는 서로가 지진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 슬프다는 걸 알고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슬픔을 함께 이겨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4.02.05. km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카흐라만마라슈=뉴시스] 김명년 기자 = 5일 오후(현지시간) 만난 카흐라만마라슈 엘비스탄에 조성된 무시아드 엘비스탄 컨테이너 임시 정착촌에서 일하는 하티제(22). 하티제는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우리 모두는 서로가 지진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 슬프다는 걸 알고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슬픔을 함께 이겨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4.02.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하티제는 "이재민들은 집을 떠나 컨테이너에서만 생활하게 되지 않았나. 지진으로 직업과 집 등 삶의 기반을 한 순간에 잃은 사람들이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 지루해하고,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슬픔을 곱씹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 이들을 위해서 소모임, 단체 운동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곳에 사는 여성 중 한 명은 지진 때 다쳐 아픈 남편을 돌봐야 했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온종일 간병만 하다 보니 본인도 힘들어하더라"며 "그 분이 우리와 함께 단체 활동, 운동 치료(physical therapy)를 받고 난 후 일상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고 해줘 슬픈 동시에 보람도 느꼈다"고 전했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도 열심이다. 컨테이너촌 뒤편에 마련된 텐트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형형색색의 매트가 깔려 있으며, 0~3세 영유아들이 안전하게 놀이 활동을 하는 별도의 공간도 마련돼 있다.

청소년을 위한 도움도 아끼지 않는다. 학교 배구팀에 소속된 딜라라(13)와 아슬리(13)는 임시 정착촌 앞 공터와 바로 뒤 위치한 스포츠 센터 등에서 일주일에 이틀씩 배구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하티제는 "올해 지역 대회에선 아쉽게 4강에서 탈락했지만, 내년엔 우승이 목표라고 해 열심히 연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아동 여성 비율이 높은 만큼 곳곳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무시아드 엘비스탄 임시 정착촌에서 일하는 간호사 멤도바(29)는 "지진 후 이곳에서만 15명의 아이가 태어났다"며 "산모들이 근처 병원에서 출산하고 돌아오면 정기 검진을 통해 아이와 산모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한다"고 전했다.

카흐라만마라슈 주정부는 튀르키예 주택개발부(Toki·Toplu Konut İdaresi Başkanlığı)와 함께 이재민을 위한 주택 건설에 한창이다.

주정부는 지난해 3월부터 이재민을 위한 주택을 짓기 시작했으며, 주 전체에 총 2만2240가구(unit)가 세워질 예정이다. 카흐라만마라슈 엘비스탄에만 총 3615채가 보급된다.

[말라티아=뉴시스] 김명년 기자 = 3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말라티아 예실리우르트에 조성된 컨테이너 임시 정착촌에서 한 아이가 한국어로 '긍정을 퍼트려 봐'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다. 2024.02.03. kmn@newsis.com
[말라티아=뉴시스] 김명년 기자 = 3일 오후(현지시간) 튀르키예 말라티아 예실리우르트에 조성된 컨테이너 임시 정착촌에서 한 아이가 한국어로 '긍정을 퍼트려 봐'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다. 2024.02.03. [email protected]


21세기 최악의 자연재해 중 하나로 꼽히는 대지진으로 삶의 터전과 가족들을 잃었지만, 기자가 사흘동안 만난 튀르키예 시민들은 모두 환하게 웃어 보였다.

지난 3일 찾은 말라티아주 예실리우르트의 르네상스 임시 정착촌에 사는 4살 소녀 미라지는 '긍정을 퍼트려 봐'라는 한국어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이곳을 찾은 기자들에게 들고 있는 사탕을 권했다. 미라지는 "한국어 문구의 뜻은 모르지만, 부모님과 함께 간 가게에서 이 티셔츠가 마음에 들어 골랐다"고 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수비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를 좋아한다는 9살 소년 쿠제이는 "자라서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아이들끼리 축구를 할 때마다 골키퍼를 맡는다는 그는 골키퍼 장갑을 자랑스레 보여주며 "언젠간 김민재의 나라인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띤 아이들은 아이돌 그룹 BTS·스트레이키즈와 축구선수 김민재 등 한국의 유명 인사들을 거론하며 "코레(Kore·한국)를 좋아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기도 했다.

[아디야만=뉴시스] 김명년 기자 = 4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디야만 메르케즈에 위치한 컨테이너 임시 정착촌에 마련된 기술·과학 워크숍 센터에서 자원봉사자 선생님들과 아이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02.04. kmn@newsis.com
[아디야만=뉴시스] 김명년 기자 = 4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디야만 메르케즈에 위치한 컨테이너 임시 정착촌에 마련된 기술·과학 워크숍 센터에서 자원봉사자 선생님들과 아이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02.04. [email protected]


지난 4일 찾은 아디야만주 메르케즈의 K2 임시 거주촌에서도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이 임시 정착촌에 세워진 터키 과학·기술 워크숍 센터(Türkiye Teknoloji Takımı deprem bölgesi bilim atölyeleri)에서 자원봉사 중인 대학생 데니스(21)는 "나 역시 지진 피해자여서 이 컨테이너 임시 거주촌이 마치 집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아이들을 돕고자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함께 자원봉사를 하는 대학생 세나(21)도 "아이들이 처음엔 가족을 잃은 참담한 고통과 외로움에 시달렸으며, 언제든 집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감으로 괴로워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교육 과정에서 그림 그리기를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고,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웃으며 수업을 들으러 온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K2 임시 정착촌에 사는 7~14세 사이 어린이 18명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 일반 과학·항공·인공지능·디자인과 설계·기계 등 5개 과정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기자단과 함께 이곳을 찾은 메흐멧 트를르(Mehmet Tırlı) 아디야만주 부지사는 "이 워크숍 센터를 포함해 어린이들을 위한 체육활동 시설, 여성들의 직업 훈련을 돕는 시설 등 총 3개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과학 워크숍 센터는) 아이들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하고, 국가 발전 및 과학 인재 양성에도 도움이 되는 중요 시설"이라고 강조했다.

[아디야만=뉴시스] 김명년 기자 = 4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디야만 도심에서 1년 전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 잔해가 남아있다. 2024.02.04. kmn@newsis.com
[아디야만=뉴시스] 김명년 기자 = 4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디야만 도심에서 1년 전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 잔해가 남아있다. 2024.02.04. [email protected]


정부와 시민들이 한 마음이 돼 지진 피해 회복을 위해 힘쓰곤 있지만 상흔은 여전히 곳곳에서 발견됐다.

카흐라만마라슈주 엘비스탄 주택 건설 현장 바로 앞에는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이 철거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길목 곳곳에서 벽돌과 철근, 쓰레기가 뒤섞여 있는 공터를 볼 수 있었다.

말라티아주의 경우, 건물 사이사이 콘크리트 잔해가 무성한 공터가 남아있었고, 재건축에 착수조차 못한 채 가림막과 구조물로 덮여있는 건물도 곳곳에 자리했다. 오만 제국 시절에 지어진 말라티아의 유적 예니 모스크(Yeni Cami) 역시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아디야만주 메르케즈의 한 식당 맞은편 건물은 철거 시작도 하지 못한 채, 한쪽 벽면이 무너진 채 각종 철근이 사방에 나뒹구는 모습 그대로였다.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도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만 겨우 걷어낸 채 재건축을 시작도 하지 못한 주택, 미처 치우지 못한 폐차 수십 대가 들어찬 공터 등이 보였다.

[아디야만=뉴시스] 김명년 기자 = 4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디야만 오메를리에 위치한 지진 피해 이재민 영구 거주지 건설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히 작업을 하고 있다. 2024.02.04. kmn@newsis.com
[아디야만=뉴시스] 김명년 기자 = 4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디야만 오메를리에 위치한 지진 피해 이재민 영구 거주지 건설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히 작업을 하고 있다. 2024.02.04. [email protected]


그러나 복구와 재건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튀르키예 정부 계획에 따르면 510억 터키 리라(약 2조2400억원)을 투입해 지진 피해를 입은 11개 주에 총 30만7000채의 주택을 지을 계획이다. 특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진 발생 1년 안에 20만채가 넘는 집을 짓겠다"고 약속한 만큼, 속도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말라티아 주정부는 튀르키예 주택개발부(Toki·Toplu Konut İdaresi Başkanlığı)와 함께 이재민을 위한 주택 건설 사업을 진행 중이다. 총 2만5000명의 인력을 동원해 1만4636채의 주택을 건설하고 있는데, 이르면 이달 말부터 입주가 가능하다.

[아디야만=뉴시스] 김명년 기자 = 4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디야만 오메를리에 위치한 지진 피해 이재민 영구 거주지 건설 현장에 한 관계자가 열쇠 꾸러미를 들고 있다. 2024.02.04. kmn@newsis.com
[아디야만=뉴시스] 김명년 기자 = 4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아디야만 오메를리에 위치한 지진 피해 이재민 영구 거주지 건설 현장에 한 관계자가 열쇠 꾸러미를 들고 있다. 2024.02.04. [email protected]

아디야만 주정부 역시 주택 4만4352채를 짓고 있으며, 특히 아디야만주 북부(1만6433채)를 중심으로 건설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중 일부에 대해서는 지진 발생 1주년이 되는 6일부터 당첨자 '뽑기'를 진행할 계획이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6일부터 지진 피해 지역을 직접 찾아 영구 주택 단지 입주자들에 대한 축하를 전할 계획이다.

다만 이들 주택 대부분이 5개월~1년 사이에 완공된 만큼 '날림 공사'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튀르키예 주택개발부 관계자는 "건설 전 토양 지질 검사 등을 실시해 지진 단층을 피해가는 곳에 주택 단지를 조성했으며, 내진 설계 등도 꼼꼼하게 했다"고 답했다.

이 주택에 입주하게 되면 자동으로 집주인이 돼 월세 등의 비용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주택은 정부에서 지은 것인 만큼 20년에 걸쳐 집 가격에 상응하는 액수의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데, 입주 후 첫 2년 간은 상환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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