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길, 누구 하나 배웅은 해야죠"…영화숙·재생원 피해자의 '울림'

기사등록 2024/01/23 14:13:11

최종수정 2024/01/24 09:28:31

23일 영화숙·재생원 피해자 첫 공영장례 서약식

피해자 "공영장례 신청으로 한시름 덜어"

[부산=뉴시스] 김민지 기자 = 23일 오전 부산 동구 반빈곤센터에서 열린 영화숙·재생원 피해자 공영장례 서약식에서 피해자들은 영정사진을 전달받았다. 이날 참석한 피해자 배영식(왼쪽부터)씨, 황송환씨, 박상종씨, 김귀철씨, 손석주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 2024.01.23. mingya@newsis.com
[부산=뉴시스] 김민지 기자 = 23일 오전 부산 동구 반빈곤센터에서 열린 영화숙·재생원 피해자 공영장례 서약식에서 피해자들은 영정사진을 전달받았다. 이날 참석한 피해자 배영식(왼쪽부터)씨, 황송환씨, 박상종씨, 김귀철씨, 손석주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 2024.01.23. [email protected]

[부산=뉴시스]김민지 기자 = "영화숙, 재생원 피해자의 30~40%는 무연고자인데, 마지막 가시는 길, 누구 하나 배웅은 있어야지요…"

1960년대 부산지역 최대 부랑아 시설로 꼽히는 영화숙·재생원 피해자들의 첫 공영장례 서약식이 진행된 23일 오전 부산 동구의 부산반빈곤센터 사무실.

이곳에서 만난 손석주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62)는 공영장례 추진 이유에 이렇게 답했다.

손 대표는 "어릴 때 고아가 되거나, 이 일(영화숙·재생원)을 계기로 부모 형제간 생이별을 겪으신 분들이 많다"며 "어릴 때 그런 일을 처참하게 당했다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홀로 보내는 건 아니다 싶었다"고 했다.

이날 서약식에는 손 대표를 비롯한 영화숙·재생원 피해자 7명과 이들의 활동에 도움을 주는 부산반빈곤센터 관계자, 부산에서 공익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는 이주언 변호사(사단법인 두루 소속) 등이 참석했다.

피해자들은 유언장을 작성하기에 앞서 그간 서로의 마음 상태를 공유하고 안부를 묻기 위한 '사진으로 말하기' 활동을 진행했다.

부산반빈곤센터 관계자는 준비해 온 수많은 사진을 펼쳐 보였고, 피해자들은 이 활동에 익숙하지 않다는 듯 멋쩍은 웃음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사진 고르기 작업에 몰두했다.

피해자 황송환씨는 큼직한 새가 하늘에 떠 있는 사진을 들어 보이며 "다음 생에는 새로 태어나서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숙·재생원에서 겪은 고통, 형제복지원에서 겪었던 삶은 그 자체로 지옥이었다"며 '형제복지원'을 '형제지옥원'이라고 지칭하자 또 다른 참석자들은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부산=뉴시스] 김민지 기자 = 23일 오전 부산 동구 반빈곤센터에서 열린 영화숙·재생원 피해자 공영장례 서약식에서 피해자 장예찬씨는 '사진 고르기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24.01.23. mingya@newsis.com
[부산=뉴시스] 김민지 기자 = 23일 오전 부산 동구 반빈곤센터에서 열린 영화숙·재생원 피해자 공영장례 서약식에서 피해자 장예찬씨는 '사진 고르기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24.01.23. [email protected]

한 마리 큰 새와 작은 어린아이가 누워있는 사진을 고른 피해자 장예찬씨는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옛 모습' 같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어렸을 때 (수용소를 도망쳐 나와) 길을 돌아다니며 굶고 배고프니까 길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고, 그때 당시 '아 정말 누군가가 나를 잡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마치 그때의 내가 사진에 보이는 것 같아 이 사진을 집었다"고 털어놨다.

이 변호사는 이어 피해자들이 작성한 유언장이 민법상 효력을 지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유언장 작성법을 안내했다. 그는 사망 시 사후 처리와 장례 절차 등 유언장에 포함해야 하는 내용과 유언의 방식 등을 상세히 전했다.

손 대표는 이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하며 "어릴 때부터 고생한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몸이 안 좋으신 피해자분들이 많다. 추후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그 과정을 피해자들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저 또한 그렇고 많은 피해자분이 배상금의 사용처로 생각하는 첫 번째가 사회 기부다. 죽고 난 뒤 늦게나마 배상금을 받게 되더라도 사회에 좋은 일에 쓸 수 있도록 법적 도움을 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박상종씨는 "이번에 유언장을 작성하고, 공영장례를 신청하게 돼서 마음이 너무 편하다"며 "그동안 혼자 돌아가시는 몇몇 형님들을 보며 '나는 죽고 난 뒤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 너무 컸는데 한시름 덜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힘 써준 손 대표에게 너무 고맙다"며 마음을 전했다.

[부산=뉴시스] 영화숙·재생원 피해자 공영장례에 참여하는 피해자 황송환(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씨, 배영식씨, 김귀철씨, 손석주씨, 김성철씨, 박상종씨의 영정 사진. (사진=손석주 영화숙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 제공) 2024.01.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 영화숙·재생원 피해자 공영장례에 참여하는 피해자 황송환(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씨, 배영식씨, 김귀철씨, 손석주씨, 김성철씨, 박상종씨의 영정 사진. (사진=손석주 영화숙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 제공) 2024.01.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재단법인 영화숙이 운영한 영화숙·재생원은 부산 형제복지원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수용소다. 이곳에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은 강제 노역과 폭행을 당하는 등 인권유린 피해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이 같은 집단수용시설에서 인권 유린 등을 겪은 피해자는 최소 1200명에서 최대 18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해 8월 영화숙·재생원에 대한 직권조사를 의결한 뒤 현재 피해자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에 집계된 피해자는 현재 560여 명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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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길, 누구 하나 배웅은 해야죠"…영화숙·재생원 피해자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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