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술 냄새 난다" 신고에 의사 적발
최근 5년간 음주로 의사 자격정지 9건
의료법 개정 지지부진…시행규칙 손질
[서울=뉴시스]박선정 기자 =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의사가 술을 마신 채 환자의 얼굴을 봉합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인 가운데 의사의 음주 진료를 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동경찰서는 지난 12일 서울 강동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술을 마신 후 환자의 얼굴 상처를 봉합하는 수술을 한 20대 의사 A씨를 적발했다. 환자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혈중 알코올 감지기로 확인한 결과 A씨는 당시 음주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칫 큰 의료사고로도 번질 수 있었던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관련 규정 미비로 경찰은 A씨를 입건하지 못 하고 관할 구청과 보건소에 통보했다.
음주 의료의 경우 행정처분이 내려질 순 있지만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의료법상 음주 의료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서다.
의료법 제66조에서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1년 범위에서 면허 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규정이 있을 뿐이다.
의사의 의료행위가 의료사고로 이어졌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지만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기 쉽지 않고, 음주 사실이 명백하더라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처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음주 의료 행위가 적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년에 한 종합병원 전공의가 음주 상태로 응급 환자를 수술한 사례가 있었다. 2018년에는 한 대학병원 전공의가 술을 마시고 미숙아에게 인슐린을 과다 처방해 충격을 줬다. 비교적 최근인 2020년에는 만취 상태인 의사가 응급 산모의 수술을 집도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산모는 쌍둥이 중 한 명을 잃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5년간 음주 진료로 행정처분이 내려진 건수는 9건이다. 이들은 모두 자격정지 1개월 처분을 받았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국회에서 의료법을 고치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지난 19대, 20대 국회에서 음주 의료행위를 처벌하는 개정안들이 각각 발의됐다가 폐기되는 등 실제 법 개정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2014년 이찬열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은 마약류를 복용·투약·흡입하거나 음주 후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19년에는 유사한 법안 두 개가 발의됐다. 두 건 모두 의사가 미숙아에게 인슐린을 과다 투여한 사건이 알려진 이후 발의됐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료인 등이 술에 취한 상태나 약물의 영향으로 인해 정상적인 의료행위가 어려움에도 의료 행위를 했을 경우 면허취소와 함께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는 법안을 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음주 상태에서의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자격정지에 처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세 건의 개정안 중 두건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한 차례 상정되기도 했지만 논의가 답보 상태에 머물다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에 복지부는 최근 의료법과 관련된 행정처분 규칙을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며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만 구분되는 분류 기준을 음주, 마약 등으로 세분화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현재 자격정지 1개월 수준인 규제 수위를 3개월 이상으로 상향한다는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음주의 정도나 응급 상황 등 사안의 긴급성 등 고려해야 할 사안들이 있다"며 "의견 조회를 통해 각계의 입장을 들어보고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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