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1년 맞아 피해자 인적사항 확인 없어도 공탁 가능 ‘효과’ 평가 불구
피해자 수령 의사 관계없이 감경 목적만 노린 기습공탁 등 폐해도 만만찮아
법원 측 “재판부가 직접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규 만들기 어려운 상황”

[대전=뉴시스]김도현 기자 = 형사공탁 특례제도에 대해 일부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도 시행 1년을 맞은 이 제도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부분적인 보완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1일 대법원이 공개한 법원 통계 월보에 따르면 2023년 11월까지 대전 지역에서 신청된 공탁 건수는 총 1만 4405건이며 납부된 공탁금은 총 670억 5777만원에 달한다.
2022년의 경우 11월까지 신청 건수 1만 4143건, 형사공탁금은 총 608억 3577만원이 납부됐던 것과 비교하면 건수와 공탁금 모두 증가한 것이다.
이는 2022년 12월 9일부터 시행된 ‘형사공탁 특례제도’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형사공탁 특례제도는 피해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인적 사항을 파악해야만 공탁할 수 있었던 기존 형사공탁 제도와 달리 피해자 측 인적 사항 없이 형사공탁을 할 수 있는 제도로 2022년 12월 9일부터 시행됐다.
과거 형사 공탁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적 사항이 노출되고 피고인이 이를 알아내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이용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특례제도가 시행됐고 그 결과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접촉하지 않고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으며 피고인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형사공탁 제도를 통해 피해자에게 배상하거나 형량을 감경받을 수 있게 됐다.
피고인 입장에서는 피해자 인적 사항 없이도 공탁이 편리해졌다는 장점이 있지만 감경을 받기 위해 기습적으로 공탁하거나 피해자의 수령 의사가 없음에도 형사 공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감경받는 사례가 등장해 일각에서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지난 10월 3일 오전 2시께 15살의 A군은 충남 논산에서 술에 취해 귀가 중이던 40대 여성 B씨를 발견하고 오토바이로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납치해 한 초등학교 건물에서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 과정에서 A군은 B씨 나체 사진을 불법으로 촬영하고 “신고하면 딸을 해치겠다”는 등 협박한 후 B씨의 휴대전화와 현금 10여만원을 챙겨 달아났다.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도 A군은 오토바이 구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성매매 여성을 대상으로 강도 범행을 준비했지만 수차례 실패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B씨는 합의를 원하지 않았고 엄벌을 탄원했으며 A군은 무죄 판결을 받기 전 반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는 조건으로 1000만원을 형사 공탁했다. 재판부는 A군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며 조건부 형사 공탁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징역 장기 10년, 단기 5년을 선고했다.
또 2022년 5월 2일 오전 1시께 대전 서구에 있는 한 도로에서 택시 운전기사인 C(54)씨는 손님 D(18·여)양이 말한 목적지에 도착하자 먼저 내린 뒤 내리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손을 잡고 골목으로 가 껴안는 등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C씨는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초범이며 1000만원을 형사 공탁한 점을 유리하게 참작해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8개월로 감형했다.
다만 형사 공탁을 했으나 이를 유리하게 참작하지 않은 사례도 여럿 존재한다.
E(40)씨는 지난 2022년 6월과 7월 사이 세종에 있는 자신의 공부방에서 자신의 학생과 가학 및 피학(SM) 성향에 관해 대화하다 밧줄로 묶어 놓고 푸는 행위를 지켜봤으며 3회에 걸쳐 성적 학대 행위를 저질렀다.
특히 피해 학생에게 다이어트약을 먹는 임상실험 아르바이트가 있다며 실험 참가를 위해 공부방에서 하루 자야 한다고 속였고 자신이 처방받아 갖고 있던 졸피뎀 등 마약류를 먹인 뒤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추행했다.
1심 재판부는 E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고 E씨는 피해자에게 3000만원의 금원을 형사공탁했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공탁이 범행에 대한 진지한 반성으로 보기 어렵고 피해 학생이 수령할 의사가 없으며 엄벌을 탄원한다는 점을 고려해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지 않았다.
2023년 4월 8일 오후 2시 20분께 전직 공무원이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교차로에서 좌회전한 뒤 도로 연석을 들이받고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인도로 걷던 9~12세 초등학생 4명을 들이받아 1명을 숨지게 했으며 3명을 다치게 했다.
당시 전직 공무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08%로 면허취소 수준이었고 제한 속도인 시속 30㎞를 초과한 약 35㎞ 주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 과정에서 해당 피고인은 숨진 피해 아동에게 7000만원의 형사 공탁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유족은 형사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조했고 오히려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했다.
재판부는 선고 당시 “피해 유족은 공탁금 수령 의사가 없고 나머지 피해 아동들 가족 역시 엄벌을 탄원하고 있어 형사 공탁을 유리한 점으로 삼지는 않겠다”고 판시했다.
형사공탁 특례제도의 순기능도 있지만 피해자가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감경을 위해 공탁하는 사례가 늘자 기준이 있어야 된다는 목소리가 존재하지만 법원은 명확한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법원 관계자는 “형사공탁의 경우 현재 법적으로 정해진 기준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감경 여부는 재판부가 직접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규를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형사공탁 자체를 재판부마다 다 다르게 생각하고 또 사건마다 다르게 적용하기 때문에 일률적인 적용은 힘들다”고 말했다.
대전 지역의 한 변호인은 “형사공탁은 변호사들이 원했던 것이며 재산범죄의 경우 양형기준에 3분의 2를 변제하면 감경한다고 돼 있어 이러한 변제를 위해 필요하다”며 “다만 비재산범죄의 경우 일부 판사들이 공탁을 보고 이것을 피해회복이라고 판단해 형량을 감경하는 사례가 있어 제도가 피해자 마음과 다르게 이용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점을 악용해 기습공탁 등 사례가 늘고 있는데 비재산범죄 피해자가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힐 경우 재판부가 감경 사유로 참작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피해자 의사에 반해서 공탁하는 것을 감경 사유로 판단하지 않아야 피해자들도 만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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