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현경 기자 = 대형누각 '삼척 죽서루'와 '밀양 영남루'가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이들 누각을 국보로 지정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관계 전문가 지정조사와 문화재위원회 검토·심의를 거쳐 국보 지정을 결정했다고 28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들 대형누각은 강원과 영남지역의 대표적 누각으로, 건축적 가치 뿐만 아니라 주변 자연과 어우러져 경관적 아름다움도 크다"며 "역사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방문해 시문을 남기는 등 학술적 가치 역시 높다"고 평가했다.
'삼척 죽서루'는 고려시대에 창건됐다가 조선 전기에 재건된 이후 여러 차례 보수, 증축된 기록이 잘 남아있다. 현 모습은 조선 후기 증축된 이후 잘 보존된 상태다.
1403년 정면 5칸(측면 2칸)의 규모로 중창된 누정이었으나 1530년 남쪽 한 칸(측면 3칸)이 증축됐다. 1788년에는 북쪽 한 칸(측면 2칸)이 증축되며 현재 같은 팔작지붕 형태가 됐다. 조선 초기 중앙 5칸이, 조선 중기 좌·우측 1칸이 확장됐다. 기둥 배열, 가구의 짜임, 천장과 바닥면의 처리, 공포 및 세부 의장 등에서 각 시기별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시인·묵객 등 다양한 계층이 죽서루를 소재로 수많은 시문, 가사와 그림 등을 남겼다. 정철의 '관동별곡', 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에서 죽서루의 절경을 살펴볼 수 있다. 주변 하천인 오십천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밀양 영남루'는 건물 자체의 조형미가 뛰어나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모습은 다른 누정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빼어난 경관을 감상하면서 명사들이 수많은 시문을 남겨 조선 선조 때 영남루에 걸린 시판이 300여 개에 이르렀다. 지금은 12개만 남았다.
'밀양 영남루'는 통일신라 영남사에 있던 작은 누각이었다. 금벽루 혹은 소루, 죽루로 불렸다. 고려 때 절이 폐사되고 누각만 남아 있던 것을 1365년(공민왕 14년)에 밀양군수 김주가 중창하며, '영남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조선 초에 밀양부사 안질이 영남루 서쪽 주변에 소루를 건축했고 1442년 경상도사 권기가 소루로 명명했다. 그 후 부사 이충걸이 임경당(현 침류각)으로 개명했다.
연산군 때는 밀양부사 김영추가 임경당 반대쪽인 영남루 동북 쪽에 망호당(현 능파각)을 지어 빈객숙소로 이용했다.
임진왜란 때 객사와 함께 모든 부속 시설이 소실됐다. 1844년 이인재가 밀양부사로 재임할 때 대루를 확장하면서 많은 부속 건물을 지어 관원들과 지방 빈객들을 접대하는 객사로 사용했다.
문화재청은 28일 삼척시민과 함께하는 '삼척 죽서루' 국보 지정서 전달 행사도 연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을 비롯해 박상수 삼척시장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기념사와 축하 공연, 국보 지정서와 감사패 전달, 한시 낭독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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