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노리는 '로맨스 스캠'↑…피해 집계조차 안돼

기사등록 2023/12/26 15:23:57

최종수정 2023/12/29 10:08:22

올해 '로맨스 스캠' 피해액 50억 넘을 듯

중년·노년층 표적…"외로움 이용한 범죄"

피해사실 숨기는 피해자…"자신을 원망"

"처벌 수위 상향하고 위험성 환기해야"

[서울=뉴시스]장한지 기자 = # 40대 후반 여 A씨는 올해 4월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 덴마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한 남성을 알게 됐다. 남성은 A씨를 '여보' '아내'라고 부르며 호감과 동정심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덴마크 은행에 보관 중인 자신의 돈 50억원 상당을 배송업체를 통해 한국으로 운송하는데 필요한 경비명목 등으로 총 3회에 걸쳐 총 3800만원을 편취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소개팅·채팅앱을 통해 이성에게 접근한 뒤 호감을 얻고 돈을 뜯어내는 이른바 '로맨스스캠'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SNS 사용이 늘고 있는 고령층을 중심으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피해 구제나 범죄 예방을 위한 입법이 미비한 데다가 신종 범죄에 대한 낮은 인지도가 피해 규모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국정원 111콜센터에 접수된 로맨스스캠 피해액은 48억6000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피해액인 39억6000만원을 벌써 넘어선 액수다.

11월과 12월 집계를 합산하면 피해액은 5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부터 올해 10월까지 로맨스 스캠 피해 사례는 392건에 달했다.

로맨스스캠 범행은 주로 중년을 노려 이뤄지는 양상이다. 지난 12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이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한 로맨스스캠 국제사기단 사건의 피해자 A씨도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디자이너를 가장한 불상의 피의자에게 총 3800만원을 보냈다.

올림픽 펜싱 은메달리스트 남현희(42)의 재혼 상대였던 전청조(27)도 과거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인 중년 여성을 상대로 여러 차례 로맨스스캠 사기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층의 SNS 사용이 늘어나면서 피해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65세 남성이 호주 출신의 46세 여성과 4개월간 텔레그램으로 4개월간 소통을 이어가다가 "가상화폐에 투자하라"는 권유에 1억2000만원을 송금한 일이 발생했다.

고령층은 SNS를 통해 쌓은 연애 감정이 범죄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간한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60대의 SNS 이용률은 2018년 32.5%에서 2022년 45.3%로 증가했다.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전청조가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송파경찰서에서 서울동부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2023.11.10. kch0523@newsis.com
[서울=뉴시스] 권창회 기자 = 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전청조가 지난달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송파경찰서에서 서울동부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2023.11.10. [email protected]


문제는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죄와 비교했을 때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 구제에 적용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4조 등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금융회사에 지급정지를 신청하면 회사는 관련 조치를 즉각 실행해야 한다. 피해자가 직접 해당 금융기관에 지급정지를 의뢰하고 은행 등도 이에 협조해 추가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로맨스스캠은 갈수록 피해는 늘고 있지만 관련 법령이 미비한 실정이다.

로맨스스캠 공동소송 법률대리인를 맡았던 송지원 변호사는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용 가능한 법제가 없다 보니 보이스피싱에 못지않은 금전 손실이 발생하는 등 추가 피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며 "피해 구제나 대응이 쉽지 않아 실제 법적 소송에 나서겠다는 피해자도 적어 조속한 입법 보완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사기범에게 애정을 느끼고 속았다'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피해 사실을 숨기는 피해자도 적지 않다. 지난달 3일 서울 마포경찰서에선 로맨스스캠 사기를 당한 여성이 진정인 조사를 받은 후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중년이나 고령층의 외로움을 이용해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것"이라며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순간 '내가 왜 이렇게 어리석었지' 하면서 상대방에게 분노하기 보다는 사기 행각에 속은 자신을 원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로맨스스캠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낮은 경각심도 범죄 증가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보이스피싱 수사에 많은 인력을 투입 중인 경찰 역시 채팅 사기를 '기타 범죄'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 일부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발생하는 채팅 사기에 대한 정확한 피해 사례와 규모도 아직 집계되지 않은 실정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해당 범죄 유형에 대해 인지도가 낮다 보니 수사기관에서도 아직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크다"며 "인력도 많지 않아 수배 단계에서 어려워지면 수사가 사실상 중단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로맨스스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한편, 피해자가 위축되지 않도록 가해자에 처벌수위를 상향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허 조사관은 "보이스피싱처럼 구형을 높이는 등의 방식으로 수사기관이 신원을 속이는 사기 범죄에 대해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며 "신원 사기를 막지 못한 앱이나 SNS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마련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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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노리는 '로맨스 스캠'↑…피해 집계조차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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