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명의 합창단과 60여명의 오케스트라가 유명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노래한다. 한옥의 전통 문양을 연상시키는 격자무늬 무대에 '한'이라는 글자가 나타나고, '평화의 소녀상'을 오마주한 조형물들이 무대로 내려앉는다.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가 2년만에 돌아왔다. 이탈리아 출신 스타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가 2021년에 이어 다시 연출을 맡아 시공간을 초월한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들은 포로로 잡혀온 나부코의 딸 페데나만 믿고 있다. 하지만 붉은 옷을 입은 나부코와 바빌로니아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페데나를 사랑하는 유다왕국 조카 이즈마일레가 그녀를 나부코에게 돌려보낸다. 스테파노 포다는 바빌로니아인과 유대인을 각각 빨간색과 흰색의 무리로 구분해 무대를 가득 채웠다. 상황에 따라 무대는 붉게 물들고, 하얗게 비워진다. 2막에서 두 무리가 뒤얽히며 인간 탑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백미다.
이야기는 나부코와 두 딸 아비가일레와 페데나, 유다왕국 조카인 이즈마일레 사이의 사랑과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비가일레는 동생 페데나에게 마음을 준 이즈마일레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자신이 노예의 딸이라는 사실, 나부코가 페데나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분노에 사로잡힌 아비가일레는 왕위를 찬탈하고 동생을 죽이려 한다. 페네나에 대한 질투, 아버지에 대한 인정욕구, 이즈마일레에 대한 사랑을 드라마틱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4막에서 페데나에게 용서를 구하며 부르는 노래가 감동을 자아낸다.
3막 후반부 바빌론 제국 치하에서 잃어버린 조국을 그리워하며 노예들이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를 부르는 부분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무대 뒤에는 '한'이라는 한글 글자가 나타나고,천장 전체가 서서히 내려오며 '평화의 소녀상'을 오마주한 조형물들이 모습을 보인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한국적 정서도 이 작품의 볼거리다. 포다는 한옥의 전통 문양을 연상시키는 격자무늬로 무대를 둘러싸고 한국의 전통 실크를 활용한 의상을 사용했다.
삶이 엉망진창이었던 당시의 베르디는 꿈과 환상으로 가득한 오페라를 작곡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일만 같았다. 그런데 무심히 대본을 살펴보던 중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가 들어왔다. 이 가사는 고통으로 가득한 베르디의 마음과 공명했다. 그리고 베르디는 오페라의 역사에 길이 남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탄생시켰다. 이 곡은 합스부르크 제국(오늘날 오스트리아)과 스페인의 지배로 고통받았던 당시 이탈리아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특히 이탈리아인을 하나로 묶는 투쟁가가 됐으며, 현재까지도 이탈리아 제2의 국가로 여겨진다.
나부코 역에는 바리톤 양준모와 노동용이 나선다. 아비가일레 역은 소프라노 임세경과 박현주가 맡는다. 지휘는 광주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인 홍석원이 맡는다. 11월30일~12월13일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