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피아니스트의 시선이 먼 곳을 향한다. 그의 손끝을 따라 관중들도 시간여행을 떠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 협연자로 마지막으로 청중 앞에 섰던 1808년 12월 오스트리아 빈의 안 데어 극장. 자신의 뮤즈였던 요제피네 폰 다임 백작부인에 대한 마음을 담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 G장조, op.58'이 초연되던 바로 그 때다.
지난해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하며 세계 클래식계에서 일약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임윤찬(19)이 지난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라 또 한번 천재성을 입증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 독일 전통 사운드의 계승자 뮌헨 필하모닉과 함께 하는 공연인 만큼 국내 클래식팬들의 기대가 뜨거웠다.
로비는 공연 한참 전부터 치열한 경쟁을 뚫고 티켓팅에 성공한 2500명의 클래식팬들로 가득 찼다. 공연 1시간 전부터 포토월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긴 줄이 만들어졌고, 공연 직전엔 1500부의 프로그램북이 동이 났다. 정병국 예술위원장 등 예술계 인사들도 임윤찬과 뮌헨필의 협연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뮌헨필이 자리를 잡고 정명훈과 임윤찬이 함께 무대로 들어섰다.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피아노 앞에 앉은 임윤찬은 다섯마디 연주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의 시작을 알렸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은 베토벤이 남긴 협주곡 중 가장 온화하고 유려한 작품으로 꼽힌다. 1악장에서는 밝고 따사로운 선율이 아름답고 풍부하게 펼쳐진다. 임윤찬은 특유의 명료한 타건과 폭발적인 카덴차로 청중의 몰입을 이끌었다. 임윤찬은 때로는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춰 몸을 흔들고, 때로는 먼 허공을 바라보며 자신 속으로 침잠했다.
베토벤의 고뇌를 응축한 듯한 2악장에서는 피아노의 탄식과 무겁고 거친 오케스트라가 부딪히고 대립한다. 숨도 쉬기 힘든 긴장감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3악장은 팀파니와 트럼펫이 가세하며 웅장하고 활기찬 분위기로 변한다. 임윤찬은 눈부신 기교로 환희를 향해 돌진하는 듯한 완벽한 피날레를 이끌어냈다.
연주를 마친 후 정명훈이 임윤찬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객석은 환호와 박수로 가득 찼다. 마치 아이돌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관객들도, 뮌헨필도 앙코르를 청했다.
임윤찬이 선택한 곡은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었다. 특유의 또랑또랑한 타건으로 아름답고 달콤한 곡을 마무리한 그에게 앞 줄의 팬이 레고 모형으로 만든 빨간 장미를 건넸다. 임윤찬은 장미를 다시 뮌헨필 악장에게 선물했고, 객석에선 다시 뜨거운 환호가 터져나왔다.
1부의 주인공이 임윤찬이었다면 2부는 정명훈과 뮌헨필의 무대였다. 뮌헨필은 정명훈의 지휘에 따르며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을 통해 오케스트라 특유의 독일 전통 사운드를 들려줬다. 투명하고 명료한 음색, 개성있는 밸런스에 관객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영웅 연주가 끝난 후 정명훈은 "대한민국 전체에서 한 사람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앙코르곡을 소개했다. 김바로 편곡의 '아리랑'이었다. 뮌헨필 단원들이 만들어내는 아리랑 선율이 청중들에게 또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임윤찬과 정명훈, 뮌헨필은 예술의전당에 이어 오는 29일 세종문화회관, 12월1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