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등급 아파트, 부산 내 12곳…전국 최다
구 관계자 "예산·사유지·거주민 의사 탓 이주 쉽지 않아"
[부산=뉴시스]김민지 기자 = 길 하나를 두고 고층의 호텔 건물을 마주 보고 있는 오래된 낡은 아파트. 부산 최초의 아파트이자 안전등급 최하위 'E등급'을 받은 중구 청풍장과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소화장에는 여전히 수십 명의 주민들이 위태롭게 살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밝게 내리쬐는 햇빛에도 청풍장은 아파트 입구부터 스산한 기운이 물씬 풍긴다.
녹슨 철창문 옆에 부착된 노란색의 '구조 안전 위험시설물 알림문'은 아파트 전체 가구(24가구)에 대한 사용 제한을 알리고 있다.
복도 천장에 붙은 아파트 계단 전등은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돼 보였다. 군데군데 깨진 벽 사이로는 철근이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었다.
1941년 지어진 청풍장은 2021년 10월의 정밀안전진단에서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이는 '주요부재에 발생한 심각한 결함으로 시설물 안전에 위험이 있어 즉각 사용 금지하고 보강 또는 개축해야 하는 상태'를 뜻한다.
관련 이행 사항을 규정한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건물 관리 주체는 시설물에 대한 사용 제한, 사용 금지, 철거, 주민 대피 등의 안전조치를 안내하거나 시설물의 보수·보강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E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건물 관리 주체가 건물 소유주에게까지 안전 관리를 강제할 수 있는 사항은 없다.
붕괴 위험 탓에 자연재해가 있을 때마다 즉각 대피령이 내려지지만, 아직도 청풍장에는 11세대 17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청풍장 건립 3년 후인 1944년에 지어진 소화장 건물도 크게 다를 바 없는 환경이다. 소화장 역시 청풍장과 함께 정밀안전진단 결과 E등급을 받은 건물로, 총 24세대 중에서 17세대 20명은 여전히 이 건물에 살고 있다.
소화장 아파트 1층은 건축 자재물이 나뒹굴고 있었고, 계단 벽은 청풍장과 마찬가지로 깨진 채 벌어져 있었다.
심지어 아파트 맨 꼭대기 층의 계단 등은 가느다란 줄 하나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어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소화장 거주민 A(60대)씨는 "대피령이 떨어질 때마다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사는 데에는 크게 문제없다"며 이주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욱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분당을)이 지난달 16일 국토안전관리원으로부터 받은 '공동주택(시설물) 안전 등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전국의 E등급 공동주택은 총 26곳이다.
이 중 부산 소재 건물만 12곳으로 거의 절반에 달하며 이는 모두 부산지역의 원도심으로 꼽히는 동구와 영도구, 중구에 위치하고 있다.
또 다른 E등급 아파트인 영도구 영선아파트는 안전에 위협받는 것을 넘어 폐가 체험의 공간으로도 활용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지만, 이 건물에는 버젓이 1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청풍장·소화장 관할 관청인 중구청은 위험 요소 발견 시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계측기를 설치하기도 했지만, 입주민 이주 계획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예산 문제도 있을 뿐더러 건축물 자체도 사유지고, 입주민들의 의사도 있으니 이주를 추진하기에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영도구청 관계자는 "영선아파트를 포함한 관내 E등급 건축물에 대한 정밀안전진단 용역 발주 중"이라며 "내년 초 용역이 마무리된 뒤 세부적인 보수·보강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계획까지는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적극적인 이주 지원이 되지 않는 이상 E등급 거주민들의 형편이 나아지기엔 쉽지 않아 보인다. 시 관계자는 "관내 E등급 건축물에 대한 관리는 각 구·군에 맡기고 있고, 구·군의 이행 조치 사항을 전체 확인하는 것을 시에서 하고 있다"며 "이주와 관련해서는 시에서 직접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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