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영국 추리작가협회 주관 대거상 한국 최초 수상
'밤의 여행자들'→신작 '불타는 작품' 출간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마당 딸린 '개'의 집에 제가 들어가 살면 웃기지 않나요?"
소설가 윤고은(43)의 이야기는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된다.
지난 2021년 영국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수상한 '밤의 여행자들'은 쓰나미와 지진이 난 곳으로 떠나는 재난관광이 떠올라 시작됐다. 단편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은 높아진 집값에 떠밀려 북한 신도시에 아파트를 분양받는 남한 청년을 상상해 썼다.
최근 출간한 신작 '불타는 작품'은 인간이 돌본다고 생각하는 반려견이 '갑'의 위치에 서면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다뤘다. 예술가를 발굴하고 후원하는 로버트재단의 이사장인 로버트가 사람이 아닌 '개'라는 설정에서 출발해 자본주의와 예술의 관계를 교묘하게 비꼰다.
"이게 제가 세상에 말을 거는 방식이에요."
"줄거리만 들으면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는 사실 현실의 진지한 이야기를 다루는 윤고은만의 방식이다. 낯선 설정 속에서도 그의 소설에는 기후위기, 부동산 문제 등 독자들이 생각해 볼 지점이 존재한다. 이번 소설에서는 젊은 미술작가 안이지가 로버트의 후원을 받아 창작하는 과정에서 "진짜란 무엇인가"를 고뇌하게 만든다.
최근 윤고은 작가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나 신작 '불타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불타는 작품' 떠올린 뒤 뱅크시 파쇄 퍼포먼스…"소설 속 일 실제로 벌어지면 신나고 재밌다"
이번 소설에서 윤고은은 "못된 작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고약한 설정을 가져왔다. 주인공 안이지가 재단의 도움을 받아 그린 그림 가운데 로버트가 선택한 그림은 반드시 소각해야한다는 것이다. 제목 그대로 '불타는 작품'이 나와야 재단의 프로젝트는 종료된다.
"뱅크시를 보고 떠올린 건 아니에요."
놀라운 사실은 그가 처음 소설을 쓴 당시엔 낙찰되는 순간 파쇄가 돼 화제가 된 뱅크시의 '절반 파쇄' 작품이 나오기 전이었다는 점이다. 2018년 뱅크시의 작품 파쇄 해프닝 당시 윤 작가의 '불타는 작품'의 원안이 됐던 단편은 이미 계간지에 발표된 상태였다.
윤고은의 엉뚱함이 단순히 상상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증거다. "작품이 소각되거나 파쇄되면 어떨지 생각하며 이야기를 쓴" 작가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지는 것을 목격하면 신나고 재밌기도 하다"고 말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세상도 계속 같이 움직이는 느낌을 그는 종종 받는다.
진짜란 무엇인가…창작에 필요한 건 '불타는 마음'
"인공지능은 창작의 고통이 없잖아요."
이 때문에 윤고은은 인공지능이 만든 소설과 그림은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타는 마음' 없이 만들어진 작품은 예술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미술과 달리 '원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소설에서도 '진짜'는 "작가의 '불타는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거상 수상 후 세계 여러 독자를 만나고 있지만 여전히 그에게도 '불타는 마음'이 남아있다. 매번 새로운 소설을 쓸 때마다 "낯선 섬에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는 그는 다시 한번 엉뚱한 상상을 하고 곤란한 상황에 주인공을 빠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윤고은이 자신의 소설 가운데 '불타는 작품'을 고른다면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대답했다.
"데뷔작 정도는 사라져도 괜찮을 거 같아요."
그리고 그는 마치 소설 속 안이지처럼 이내 번복했다.
"아니에요. 막상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다시 소중해질 것 같아요. 저도 안이지처럼 결국 못 고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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