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뉴시스] 김동영 기자 = 2018년 필리핀에서 A(20대·여·국적 필리핀)씨는 한국인 남성 B(60대)씨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해 부부는 슬하에 딸 C양을 출산한 뒤 A씨는 2020년 무렵 한국으로 먼저 귀국했다. 이후 홀로 필리핀에서 양육을 맡아온 B씨는 C양이 4살이 되던 2022년 3월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생활이 녹록치 않던 A씨 부부의 한국생활에 C양은 한줄기 희망과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10월부터 B씨가 A씨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면서부터다. 그는 A씨에게 “죽여버리겠다”며 욕설과 협박을 하거나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결국 A씨 부부는 2022년12월 별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년6개월의 짧은 시간동안 A씨는 살림살이 장만을 위해 남동구가족센터를 찾아 구직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C3비자 단기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A씨는 어떠한 경제활동도 할 수 없었다. 이에 센터 측의 도움을 받아 F6(결혼비자)를 얻은 A씨는 주방보조일과 세탁원 등에서 일을 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월급을 B씨 명의 계좌로 수령 받아 경제권을 주도적으로 행사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또 A씨의 소득발생으로 인해 기초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될까 걱정하는 B씨로부터 욕설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데려왔는데, 왜 제대로 (자신을)부양하지 않느냐”면서 “필리핀에서 생활할 때와 변했다”며 폭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지난 6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인천 논현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별거생활에도 B씨의 폭행이 수그러들지 않자, A씨는 이혼소송까지 염두에 둔 상황이었다.
별거생활을 이어오던 이들 부부에게 비극적인 일이 발생한 건 지난 17일. 한달에 두 번 주말동안 C양은 B씨의 주거지에서 생활했다. C양과 함께 있고 싶다는 B씨의 주장 때문이다. 그러나 당일 B씨는 A씨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뒤 주거지에서 C양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C양을 남편의 집으로 보내기 싫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할 수 없었다. 실제로 A씨는 해당 내용을 경찰에 문의했지만, “이혼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B씨와 C양의 만남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의견을 전달받았다. 또 남편을 이따금 무서워하던 C양도 B씨를 보면 환하게 반겨 큰 일이 발생할 거라 예견치 못했다.
결국 노파심에 휴대전화를 들어 C양의 안부를 묻던 영상통화가, A씨에게는 딸의 생전 마지막 모습으로 남았다. 19일 오후 1시께 열린 C양의 발인식에서 A씨는 딸아이의 영정사진을 보며 통곡했다. 그는 딸아이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 사건 관련 제도 가운데서도 특히 ‘면접교섭권’ 문제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면접교섭권은 부부가 이혼한 뒤 자식을 양육하지 않는 부모가 자식을 만날 수 있는 권리다. A씨 부부의 경우 이혼이 확정되지 않아 면접교섭권이 효력이 발생할 수 있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 연장선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김성미경 인천이주여성센터살러온 소장은 “면접교섭권은 아동의 권리이자 부모들의 의무이기도하다”면서도 “폭력 가정에서의 면접교섭권은 하나의 피해자를 통제하거나 지배하려는 도구가 되고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권리를 통해 아이의 안전을 협박, 피해자를 통제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며 “폭행이 일어난 가정과 관련 면접교섭권은 굉장히 엄격히 다뤄져야하고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박동규 남동구가족센터 센터장도 “이번 사건의 경우 부부 간의 갈등이 결국 아이한테 화풀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해석이 될 여지가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이가 부부 갈등에 이용되지 않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가족은 다양한 형태를 변화되고 있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고려하는 변화가 아니라 어른들의 입장 변화가 대부분”이라면서 “적어도 국가 제도는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으로 변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천 남동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9시45분께 인천 남동구의 한 빌라에서 B씨와 C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B씨로부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유족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현장에서는 B씨가 극단적 선택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이 나왔다. 유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또 숨진 C양의 몸에는 별다른 외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들의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경찰은 B씨가 딸 C양을 살해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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