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베이어 밸트' 사라진 최첨단 공장
인간 중심적 자동화·최고 수준 연결성 확보
마이바흐·EQS 등 생산… '명차 공장' 이어간다
[편집자주] 팩토리원(Factory1)은 우리말로 '1호 공장'을 말합니다.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갖는 완성차 업체들의 팩토리원은 곧 완성차의 역사 자체입니다. 그렇다고 팩토리원이 과거에만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연기관차 시대를 뛰어넘어 전기차 시대로 가기 위한 치열한 변화가 지금 전 세계 팩토리원에서 불꽃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뉴시스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글로벌 완성차들의 팩토리원을 직접 탐방해 그들의 제조업 정신과 미래를 향한 도전을 생생히 전해 드리려 합니다.
[슈투트가르트(독일)=뉴시스]안경무 기자 = 차량 문짝과 타이어가 아직 장착되지 않은 조립 단계의 차체들이 공장 근무자들의 머리 위로 지나다닌다. 이 차체 이동은 공중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진다. 레일에 설치된 파란색 설비는 마치 인형 뽑기 기계가 인형을 집듯 차체를 골라 공장 내 원하는 곳으로 보내준다.
바로 아래 지상에서는 협동 로봇이 차량 제작에 필요한 자재들을 혼자 알아서 옮긴다. 공상과학 소설의 한 장면처럼 독일 진델핑겐 소재 메르세데스-벤츠의 최첨단 공장 '팩토리56'에선 이런 최첨단 자동화가 일상으로 이뤄진다.
지난 6일(현지시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위치한 벤츠 진델핑겐 공장을 찾았다. '벤츠의 고향'이자 '자동차의 도시'로 불리는 진델핑겐은 독일 명차들의 본거지인 슈투트가르트에서 15㎞ 떨어진 곳에 있다.
근무자 3만5000명이 일하는 300만㎡ 규모의 이 공장에선 지난해 기준 차량 24만대를 생산했다. 1915년 다임러의 항공엔진 제작을 시작으로 가동한 이 공장은 올해로 설립 109년째를 맞는 벤츠 역사의 '산증인'이다.
진델핑겐 공장 중에서도 차량 조립 공정을 맡은 '팩토리56'은 전기차 시대에 벤츠의 사실상 '팩토리원(1호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팩토리56은 벤츠 혁신 공장 1호라고 할 수 있다. 팩토리56에서 조립·생산하는 전기차 모델들이 하나 같이 벤츠 역사와 지향점(럭셔리)을 넉넉히 담고 있는 것도 이 공장이 전기차 시대의 팩토리원으로 불리는 이유다.
벤츠는 독일 브레멘과 라슈타트, 진델핑겐 3개 공장에서 승용차를 생산하는데 공장별로 생산 모델이 각기 다르다. 진델핑겐 팩토리56에선 내연기관 S클래스 세단과 S클래스 롱 베이스 모델, 마이바흐 S클래스와 전기차 세단 EQS, 고성능 AMG EQS 등을 주로 생산한다.
사실상 팩토리56은 럭셔리 브랜드를 표방하는 벤츠, 그 중에서도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최고급 모델'을 생산하는 주력 공장이다. 벤츠는 팩토리56 신설을 위해 2020년 7억3000만 유로(약 1조원)을 투자했다.
'컨베이어 벨트' 없는 공장…현실된 상상
팩토리56에선 조립뿐 아니라 부품 운반도 자동화 돼 있다. 400대의 자동무인운반차량(AGV)이 공장 곳곳에 깔린 레일을 통해 차량 제작에 필요한 자재를 실어 나른다. 로봇들은 사람 키 이상으로 높은 짐을 가득 싣고 공장 곳곳을 누빈다.
공장 홍보 담당자 마누엘라 슈나이더 씨는 "이 자동화의 포인트는 1개 로봇이 1개 차량에 필요한 자재만 옮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짐을 실은 로봇들은 움직이는 동선에 작업자가 있으면 잠시 멈췄다가, 작업자가 완전히 사라지면 다시 움직인다.
그렇다고 팩토리56에 사람의 손길이 전혀 안 닿는 것은 아니다. 공장 곳곳에서 작업 중인 근로자가 눈에 띄는데, 이들은 기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부분적'으로만 작업에 개입한다. 사실상 사람이 차체를 조립하는 게 아니라, 기계 작동을 관리하는 것이다.
단 최종 품질 확인 작업에 투입되는 인력은 더 많다. 이는 20여년 전과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다. 당시만 해도 이 공장에선 차량 조립 공정의 90%를 작업자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다.
벤츠 '디테일'의 절대강자, 팩토리56
차체를 공정 곳곳으로 옮기는 플랫폼은 차체를 지면 위로 최대 60도까지 세울 수 있다. 통상 다른 공장에선 차량 하부 조립을 위해 차체 아래에서 머리를 들어 조립해야 하지만 이 공장에선 시선을 정면으로 한 채 일을 할 수 있다. 팩토리56에선 하부 작업 시에도 노동자가 정면을 응시하고 편안한 자세로 얼마든지 효율적인 작업이 가능하다.
팩토리56의 또 다른 특징은 공장 내 작업자 중 누구도 안전 장비인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머리 위로 차체가 이동하기에 자칫 위험할 수 있지 않냐고 묻자, 슈나이더 씨는 "사고가 난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다. 공장 설계 과정에서 노동자 안전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울러 팩토리56에서 이뤄지는 모든 작업을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다.
고성능 WLAN과 5G 이동통신 기술이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 확인할 수 있는 팩토리56만의 '360도 커넥티비티(연결성)'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디지털 생산 기술은 공장 내 모든 곳에 구현돼 있다. 라인 안의 차량은 실시간 추적이 가능하며, 차량 데이터는 공장 인력의 디지털 기기와 디스플레이 화면을 통해 곧바로 작업자가 점검할 수도 있다.
벤츠 '명차의 고향'…럭셔리카 주 생산
벤츠는 팩토리56의 일일 생산량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연간 생산량(24만대)을 기준으로 볼 때 하루 평균 660대 정도 생산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는 내연기관 S클래스 세단, S클래스 롱 베이스 모델, 마이바흐 S클래스, 전기차 세단 EQS 등이 포함돼 있다.
진델핑겐 공장은 벤츠 생산뿐 아니라 연구 개발 중심 역할도 지속 수행한다. 진델핑겐 공장을 구성하는 시설의 70%가 생산 시설이고, 나머지 30%는 연구개발 설비다.
벤츠 관계자는 "마이바흐, EQS 생산에서 알 수 있듯 진델핑겐 공장은 독일 내 다른 공장에 비해 고급 모델에 집중하고 있다"며 "최고급 럭셔리의 본고장(Home of Top End Luxury)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올레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은 최근 독일 현지의 한 행사에서 "전기차 시대의 벤츠는 경쟁사 대비 무엇을 차별화할 수 있을지 줄기차게 고민해왔다"며 "그 결과 모든 분야에서 한 단계 '레벨'을 올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벤츠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생산한 1886년 이후로 이 같은 정체성 고민을 계속해왔다. 전기차 시대에도,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겠다는 의지다.
격이 다른 자동화와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전기차 1호 공장, '팩토리56'. 이곳이 바로 벤츠 최고 리더들이 구상하는 다음 도약을 이끌 '총본산'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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