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커 반갑긴 한데"…'오버투어리즘' 앓는 북촌의 명암[현장]

기사등록 2023/08/29 16:11:56

최종수정 2023/08/29 16:13:25

중국, 6년5개월 만에 한국 단체 관광 허용

주변 상인들 "이제야 매출 좀 나아져" 환영

"시도 때도 없이 대문 기웃" 주민들은 불편

[서울=뉴시스] 28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소곤소곤 대화해주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든 안내원의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3.08.28. f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28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소곤소곤 대화해주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든 안내원의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3.08.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한 무리라도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하면 전체가 금방 시끄러워져요. 그럴 기미가 보여 재빨리 제지해도 늘 역부족입니다."

28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북촌로11길 초입에 40인승 버스가 도착했고 깃발을 든 가이드와 수십 명의 관광객이 따라 내렸다. 조용했던 북촌은 이내 소란스러워졌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북촌 6경에는 '인증사진'을 남기려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관광객을 통제하는 북촌마을지킴이의 '정숙 요구'에도 일부 관광객들은 소란을 멈추지 않았다. 한옥의 기와를 만지거나 문을 두드리는 관광객도 있었다.

중국 당국이 6년5개월 만에 한국 단체 관광을 허용한 것을 놓고 주변 상인들과 관광업계는 반색하고 있지만, 여행객이 몰리는 북촌한옥마을 주민들은 늘어날 유커(중국인 단체 관광객)로 인해 일상 침범의 정도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며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만 60년 넘게 살았다는 '토박이' 김인례(92)씨는 "관광객들이 찾아야 활기도 돌고 사람 사는 동네 같지 않겠느냐"며 "관광객들도 옛날이랑 다르게 조용히 마을을 둘러보려고 한다"고 했다.

북촌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권모씨도 "이제야 매출이 좀 나아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큰 손이 많아 매출에 큰 도움을 줄 것 같아 기대하고 있다"며 유커의 복귀를 반겼다.

이에 반해 일부 주민들은 엔데믹(풍토병화) 이후 몰려든 관광객들로 이미 포화상태인 마을에 유커까지 몰려들어 더 큰 불편이 생길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30여년간 이곳에서 살았다는 주민 박모씨는 "관광객들이 더 많이 다니는 길에서 살다가 못 살겠어서 5년 전에 사람들이 덜 다니는 골목으로 이사 왔다"며 "그래도 집 대문 앞까지 오는 관광객이 있어서 문 앞에 철제 펜스까지 쳐놨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가 고마웠을 정도로 요즘 너무 시끄럽다"며 "나이 들어 다른 갈 곳이 없어 계속 산다"고 했다.

이곳 주민 이모(84)씨는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시도 때도 없이 사진을 찍고 대문 안을 기웃거리는 관광객들에게 시달리고 있다"며 "안방이랑 길이랑 붙어있고 한옥은 방음도 잘 안돼 사람들이 작은 소리로 떠들어도 다 들린다"고 하소연했다.
[서울=뉴시스] 28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한옥 밀집 지역을 걷고 있다. 2023.08.28. f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28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한옥 밀집 지역을 걷고 있다. 2023.08.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주민들의 고통 호소에도 지자체는 관광객들의 '정숙 관광'을 위해 하루에 최대 3명의 북촌마을지킴이를 배치할 뿐, 방문자 수와 민원 건수 등을 파악하지 못 하는 실정이다.

종로구청은 "2020~2021년 외래 관광객의 공식적인 북촌 방문율 추정은 어려운 상황"이라며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20%가 북촌을 방문했다는 2019년 실태조사가 최신 통계"라고 전했다. 민원 건수를 묻는 질문에는 "관광 부서 외 전 부서로 접수되는 주민 불편 민원 데이터를 취합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종로구가 북촌 관광 시간을 오전 10시~오후 5시(일요일은 금지)로 제한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강제성이 없어 잘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

북촌마을지킴이 B씨는 "오늘(28일)도 오전 9시에 단체 관광객 30여명이 왔다 갔다"며 "오후 본격적인 단체 관광에 앞서 아침 이른 시간에 북촌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제(27일)는 원래 일요일이라 관광 자체가 안 되는 날인데도 오늘보다 2~3배는 (관광객이) 많았다"고 했다.

주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당국과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북촌한옥마을은 관광진흥법상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돼 정주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면 과태료를 물릴 수 있는 지역이지만 법의 세부 시행규칙이 정해지지 않아 (법이) 유명무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관광객에게 북촌한옥마을의 혼잡도를 알려주거나, 예약 방문을 할 수 있도록 해 관광객을 분산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강제적이지 않은 방법을 통해 관광지의 매력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관광객 분산이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을 지자체와 당국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28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의 한 한옥 앞 바닥에 생수병이 버려져 있다. 계단 위에는 '올라오지 마세요'라고 적힌 팻말이 놓여있다. 2023.08.28. f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28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의 한 한옥 앞 바닥에 생수병이 버려져 있다. 계단 위에는 '올라오지 마세요'라고 적힌 팻말이 놓여있다. 2023.08.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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