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도 폐지 수거 내몰린 노인들 1만5000여명
"이렇게라도 벌어야 자식들에게 미안하지 않죠"
서울 기준 낮 최고기온 36도…온열질환자 1719명
[서울=뉴시스]박광온 기자 = "어젯밤에 4시간, 오늘 아침에 3시간 동안 모아서 4000원 받았지…자식들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7일 오전 9시30분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고물상에서 만난 김영식(74)씨는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으며 이같이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씨는 매달 30여만원의 수급비를 받으며 생활하지만, 병원비와 생활비 등 만만찮게 들어가는 비용에 아픈 몸을 이끌고 폐지를 모은다고 했다.
김씨는 "허리 통증이 꽤 있지만 이렇게라도 일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며 "조금 덜 먹고 덜 쓰고 하면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폐짓값도, 고물값도 과거보다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는 상황인데, 폭염 때문에 낮에는 움직이기도 어려워 수입도 크게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가 고물을 퍼 나르기 시작한 지 10분 후 뜨거운 열기에 아지랑이가 일고 있는 아스팔트를 뚫고 윤영자(83) 할머니가 고물상에 들어섰다.
자신의 키만큼 쌓아 올린 폐지를 리어카에 담아 온 윤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인근 쪽방촌에 거주한다는 윤 할머니는 전날 수 시간 동안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각종 폐지와 고철을 모아왔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에게 건네진 돈은 단돈 5000원에 불과했다.
윤 할머니는 "이렇게라도 벌어야 자식들에게 미안하지 않지…죽기 전까지는 더워도, 비가 와도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게 내 팔자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다만 윤 할머니는 최근 폐지를 줍다 무더위에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며 가난한 자신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주에 너무 더워서 정신이 아찔해지더라"라며 "하지만 병원비며 식비며 여러 가지 들어갈 게 만만찮아 며칠 쉬지도 못하고 또 일하러 나왔다. 조금은 돈이 있었다면 내 노후가 편했을 텐데 생각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날 서울 기준 낮 최고기온은 36도로,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상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올해 누적 온열질환자는 1719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총 2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사망자(6명)보다 3배 이상 많은 수치다.
지난 2일에는 광주 동구에서 폐지를 줍던 60대 여성이 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온열질환으로 쓰러져 숨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같은 무더위로 생사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전국에는 폐지 수거 일을 놓지 못하는 노인 수가 1만5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1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표한 '폐지 수집 노인의 현황과 실태'를 보면 우리나라 폐지 수집 노인 수는 1만5000여명에 달한다. 또 폐지 수집 노인의 연간 수입은 지난 2020년 113만5640원으로 한 달 평균 9만4636원을 번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달 1㎏당 폐지(골판지) 가격은 전국 평균 72.7원으로, 2020년 12월(80원)보다 떨어졌다. 그에 반해 물가는 큰 폭으로 올라 이들의 실질 가처분 소득은 크게 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국 지자체는 여름철 폐지 수거 노인들에 대한 여러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서울시는 지난 달부터 폐지 수집 노인 1800명을 대상으로 안전조끼와 쿨타워, 쿨토시 등 1400만원 상당의 안전·냉방용품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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