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칼부림, 정유정 사건 등 잇따라
사회 낙오·현실 비관이 극단 범행으로
"또래 향한 시기·질투로 범행 대상 선정"
은둔형 외톨이·사회불만자 대책 필요
[서울=뉴시스]김래현 기자 = '신림동 묻지마 칼부림 사건'을 계기로 뚜렷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적대감을 표출하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이날 살인 혐의로 구속된 조모(33)씨에 대한 피의자 신상공개심의위원회(신상공개위)를 개최한다.
조씨는 21일 오후 2시7분께 서울 관악구 신림역 4번 출구 인근 골목에서 일면식도 없는 20대 남성 1명을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고, 다른 남성 3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조씨 사건을 비롯해 올해 들어 '묻지마 범죄'가 잇따라 발생해 시민들의 불안을 높이고 있다. 네이버 쇼핑 트렌드 차트에 따르면 지난 23일 전체 연령대 기준 '호신용품'은 가장 많이 검색되거나 구매된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우선 3월에는 경기 용인시 죽전역으로 향하던 수인분당선 지하철 내에서 30대 여성이 흉기를 휘두른 '죽전역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아줌마 휴대전화 소리 좀 줄여주세요"라는 말이 기분이 나빠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5월에는 부산에서 과외 교사를 구한다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만난 또래 여성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23)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같은 범죄의 동기 중에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낙오된 뒤 현실에 대한 비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직후인 2017년 한국법학회가 낸 '묻지마 범죄의 형사정책적 대응방안'을 보면, 묻지마 범죄의 유형은 ▲사회현실 불만형 ▲정신장애형 ▲만성 분노형 등으로 분류된다.
특히 '사회현실 불만형'의 경우 경제적 파탄, 소외로 인해 대인관계를 기피하거나 고립되며, 사회에 대한 강한 거부감 또는 적대감을 품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거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법원에 출석하면서 "저는 그냥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유정은 평소 사회적인 유대가 전무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을 다닌 적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에 나와 조씨와 정유정 사건을 들어 "두 범인 모두 목적 없이 살아왔고 또래 동성을 향한 시기와 질투를 느껴서 그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 논문에서도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자신의 처지에 관한 비관을 범행 동기로 꼽았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이런 범죄는 무동기 살인"며 "자신이 처한 현실이나 실패·좌절과 같은 경험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면 자살이나 자해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사회로 돌리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에 관한 폭력의 형태로 발현된다"고 말했다.
이런 묻지마 범죄는 사전 예방이 어려운 범죄 유형이지만, 체계적인 사회안전망을 통해 방지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논문에서 직장 내 상담센터와 지역사회의 정신보건센터나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은둔형 외톨이나 극단적 불만형 사람들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할 것을 조언했다.
한국법학회 보고서도 "묻지마 범죄자의 다수는 사회경제적인 취약계층으로 직장, 교육, 가정환경 등이 열악한 미혼자들"이라며 "가장 최선의 형사정책은 복지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죄 경력이 많은 우범자들을 철저히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며 "특히 사회적인 어려움을 겪는 젊은 층이 성장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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