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집 몇 채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매축지마을 주민들
침수 잦지만 물막이판 대신 나무판자, 도마 현관문에 끼워
[부산=뉴시스]김민지 기자 = "사람이 사는 우리 집은 빈집이랑은 기운이 달라서 괜찮애…계속 살아야지 뭐."
강하게 내리붓던 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지난 17일 오후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에서 만난 주민 신영자(84)씨는 무너진 빈집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신씨는 자신의 집으로부터 두 채 건너 옆에 있는 빈집이 지난 14일 비가 많이 오던 탓에 무너져 내렸다고 이야기했다.
무너진 집에는 부서진 나무판자, 슬레이트 지붕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고 유리로 된 문이 깨진 채로 넘어져 골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신씨는 "나무가 삐죽삐죽 올라와 있어서 저쪽으로는 가지도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고 "유리 때문에 잘못하면 발 다친다"고 눈을 찌푸렸다.
이어 신씨는 "저 집은 20년 넘게 비어 있던 빈집"이라며 "그래도 우리 집은 사람이 사니까 사람 기운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매축지마을은 4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쪽방 수십 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으로 공·폐가가 많은 지역이다. 매축지마을이 위치한 범일5동의 공·폐가는 총 321채로 이 중 무허가 주택만 220채에 달한다.
일부 공·폐가 앞에는 '안전제일'이라는 빨간 띠가 둘러져 있었으며 심지어 골목 곳곳에는 이미 무너져 내린 빈집으로 인해 을씨년스럽게 쌓인 건축 자재들이 보였다.
또 피복이 벗겨진 채로 쪽방촌의 여러 지붕을 잇는 전선에서는 미처 마르지 못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합선으로 인한 화재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이곳에 사는 마을 주민들은 그나마 볕이 들어오는 골목 앞에 모여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고금자(83)씨는 "서로 잘 있는지 안 물어보면 안 된다"며 "수시로 집에 들러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해야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고씨는 물막이판(차수판) 대신 테이프로 둘러놓은 나무판자를 자신의 집 현관문에 임시방편으로 끼워 놓고 있었다.
고씨는 "그래도 이거(나무판자) 때문에 물이 안 들어 왔다"며 "지난해에는 이마저 안 했더니 물이 밀려 들어오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매축지마을은 바깥과 집 현관을 구분 짓는 턱이 높지 않아 비가 들어오는 피해가 잦고 주민들은 이를 대비하기 위해 나무판자와 도마 등을 현관문에 끼워 놓고 있었다.
김씨(70대)는 자신의 집 앞에 생긴 물웅덩이를 빗자루로 쓸어 내며 "비가 올 때마다 매번 이렇게 해서 이제는 익숙하다"며 "그래도 이번에는 비가 현관까지 안 들어와서 다행이지만, 앞으로 비가 얼마나 올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앞서 부산지역에는 지난 15일 오후 9시 50분께 호우경보가 발효됐고 부산의 누적 강수량(15일 오후 9시 50분~18일 8시 50분)은 중구 대청동 공식 관측소 기준으로 274.8㎜다.
부산기상청은 18일부터 19일까지 비가 내리겠고 예상 강수량(18~19일)은 100~200㎜, 많은 곳은 250㎜ 이상으로 내다봤다. 또 18일 오전 9시께 부산에는 강풍주의보도 내려졌다.
관할 주민센터 관계자는 "공·폐가가 많은 지역이지만 개인 사유지라 철거하기는 쉽지 않다"며 "집이 위험하다는 주민의 신고가 들어왔거나 순찰을 돌 때 위험해 보이면 관할 구청에 안전 조치를 시행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매축지마을은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차는 저지대 지역이라 정기적으로 순찰을 돌고 있다"며 "차수판을 배부하고 설치해 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집 구조상 설치가 어렵거나 설치 미희망자도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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