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출산 제도화로 저출생 해결?…신중론도

기사등록 2023/06/25 14:00:00

최종수정 2023/06/25 14:18:05

OECD 비혼 출산율 42%…우리나라 2.9% 수준

"법적 지위 인정해야"…'동반가정 등록제' 제안

"원하면 누구나 보조생식술 지원"…법안 발의도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가족구성권 3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6.25.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가족구성권 3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6.25.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이연희 기자 =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하는 등 초저출생이 이어지자 일각에서는 비혼 출산에 대한 법적 지위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5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에서는 '난임 부부'로만 한정된 보조생식술 시술 대상을 혼인 여부에 관계없이 임신을 원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고 비혼 출산의 경우에도 부모의 법적 권리를 온전히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비혼 출산의 제도화 담론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비혼 출산율은 41.9%로 비혼 출산 가정은 OECD 주요국에서 일반적인 가족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1993년 1.65까지 떨어진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혼외 출생에 대해 차별하지 않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편 결과 출산율이 2명대로 오르며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기준 비혼 출산율이 2.9%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비혼 출산은 결혼하지 않은 연인 또는 사실혼 관계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2020년 방송인 사유리씨처럼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자를 공여받아 인공수정으로 출산하는 사례도 포함된다.

건강가정기본법 등 각종 국내 법과 제도에서는 혼인 또는 혈연 중심으로 가족을 규정하고 있으며 난임 지원정책 등도 법적인 부부 또는 사실혼 관계일 때 대상이 된다. 따라서 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해야 초저출생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제안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20일 한반도미래연구원 정기세미나에서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자녀를 출산한 동거인에게 부모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동반가정 등록제'(가칭)를 제안했다.

동거인에 대해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및 가족복지서비스를 적용하고, 병원에서 수술동의서 등을 작성할 때 법적인 배우자로 인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밖에 ▲각자 재산을 관리하거나 처분할 수 있는 별산제 ▲부모 합의에 따른 자녀 성(姓) 선택 ▲동거인 가족과 친인척 관계 미형성 등을 전제 조건으로 달았다.

실제 청년층에서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다. 결혼은 개인의 선택으로 여기고, 결혼 없는 출산에 대한 사회 인식 역시 긍정적으로 바뀌는 추세다.

지난해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결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응답이 미혼 남성 51.3%, 미혼여성 64.5%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응답(미혼남성 36.9%· 미혼 여성 22.1%)보다 높게 나타났다. '결혼을 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은 2012년 22.4%에서 지난해 34.7%까지 12.3%포인트(p) 증가했다. 특히 20대는 39%, 30대는 39.9%로 비혼 출산에 긍정적인 인식이 40%에 육박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출산 정책 지원 대상을 부모 중심에서 자녀 중심으로 바꿀 때"라며 "국가가 아이가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데 집중하면 부모의 혼인 상태는 정책 설계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 3월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서울교육센터에서 열린 저출산 대응 2030 청년과의 긴급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2023.06.23.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 3월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서울교육센터에서 열린 저출산 대응 2030 청년과의 긴급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지난달 31일 국회에는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비혼출산지원법), 민법 일부개정법률안(혼인평등법),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생활동반자법) 등 이른바 '가족구성원 3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비혼출산지원법은 '난임 부부'로만 한정된 보조생식술 시술 대상을 혼인 여부에 관계없이 임신을 원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혼인평등법은 동성 간 혼인신고를 인정하고, 생활동반자법은 혼인 중이 아닌 성인 두 명이 서로를 생활동반자관계로 등록할 경우 가족으로 인정하고 법적인 권리와 사회적 지원을 받을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지난 2020년 방송인 사유리씨가 홀로 알지 못하는 남성의 정자를 기증 받아 출산한 것이 사회적 이슈가 된 바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비혼 여성이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낳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나 제도는 없다. 다만 보조생식술을 실제 수행하는 의료계에서 비윤리적이라고 보고 금지하고 있다. '체외수정시술은 원칙적으로 부부(사실혼 포함) 관계에서 시행돼야 한다'는 내용의 대한산부인과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이 그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이 지침이 비혼 여성의 출산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보고 개정할 것을 권고했으나 산부인과학회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산부인과학회는 "제3자의 생식능력을 이용해 보조생식술로 출산하는 것은 정자 기증자와 출생아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 논의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라며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정자 또는 난자가 익명으로 기증되는 경우 아동이 친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를 명시한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상충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일 한국미래연구원 세미나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변수정 연구위원은 "올해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되는 등 비혼 동거나 비혼 출산과 관련한 논의와 변화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결혼, 출산,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이 유연화·현대화되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인구정책으로 비혼 출산을 바라보기 이전에 비혼 출산에 대한 개인의 자율적 선택으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비혼 출산 가정을 전통적인 출산 및 가족과 동등하게 대우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인 정비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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