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훼손된 5개 대자보 중 4개가 노동 관련
"노동 의제로 대자보가 훼손은 이례적"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서울대 학내 단체들의 노동 의제와 관련한 대자보가 최근 잇따라 훼손된 것으로 파악됐다. 과거 페미니즘 이슈를 두고 대학가 대자보 훼손 논란이 잦았던 적은 있지만, 노동 문제를 다룬 대자보 훼손은 이례적이란 반응이 나온다.
16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대의 학내 인권단위들이 서울대 중앙도서관 터널에 붙인 대자보 5장이 최근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 서울시의 결정을 비판하는 대자보 한 장을 제외한 나머지 네 장은 지난달 분신 사망한 양씨를 추모하고 현 정부의 노동 정책을 규탄하는 글이었다.
'비정규직없는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이 게시한 대자보는 칼로 추정되는 물체로 수차례 난도질 되면서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맞서다 숨진 건설노동자" 이후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게 됐고, 바로 옆에 붙어있던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꿈꿉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3분의 2 이상이 통째로 뜯겨 나가 대자보를 게재한 단체는 물론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게 됐다.
대자보 훼손이 학내 갈등으로 번질 조짐도 보인다.
비정규직없는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 등 5개 학내 단체는 훼손된 대자보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대자보 훼손 사실을 알리는 대자보를 새로 붙였다.
이들은 '그날 그대가 훼손한 것은'이라는 제목의 대자보에 "6월2일, 학내 인권의제단위들이 중앙도서관 터널에 부착한 대자보의 훼손 사실이 확인됐다"며 "누군가가 테이프로 훼손을 복구하려던 시도도 발견됐으나, 그 복구된 자리마저 다시 훼손한 흔적이 발견됐다"고 적었다.
이어 "범사회적인 백래시의 폭주 속에서도 상식 바깥의 일로 여겨지던 대자보 훼손이 이토록 극명한 형태로 진리를 위한다는 대학의 중심에서 자행된 것이다"며 "이것이 사회와 대학이 누군가의 생에 대한 발화를 마주하는 태도다"라고 지적했다.
오는 19일까지 대자보 훼손과 관련한 자진 신고가 없을 시 법적 조치까지 고려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들은 원래 훼손된 대자보를 그대로 두고 법적 조치 등을 논의하려고 했지만, 찢어진 대자보 위에 학내 행사 포스터가 마구잡이로 붙으며 훼손된 대자보를 모두 철거했다.
정부와 노동계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대학가에도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확산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온라인커뮤니티에는 "건설노조는 노숙자다", "노조 감성팔이 X같다" 등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권소원 서울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코로나19를 거치며 학생 사회의 공동체성이 많이 옅어졌다"며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노동 의제를 던지는 것을 이해 못 하는 학우도 많아진 영향이 있다"고 했다.
아나키즘 소모임 '학' 소속 정환희씨도 "이렇게 여러 개의 단위의 대자보가 한꺼번에 뜯긴 것은 이례적"이라며 "최근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이 부쩍 나빠진 영향이 있다. 요즘은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노동 의제를 꺼내는 경우가 드물고, 가끔 얘기가 나오더라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자세로 여겨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