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이 창극의 옷을 새롭게 입었다. '리어', '트로이의 여인들' 등 고전 비극에서 한의 정서를 깊숙이 풀어낸 국립창극단이 이번엔 고전 희극에 우리 소리의 해학적인 맛을 더했다.
현대적으로 각색한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은 독점적 대자본에 대항하는 젊은 소상인들의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원작의 큰 틀을 따르면서 지금 시대에 맞게 이야기의 구조와 인물 관계를 손봤다.
베니스를 배경으로 한 이국적인 무대에 우리 고유의 판소리가 펼쳐지는 점이 이색적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보편적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소수의 독점 자본가와 이를 바꾸고 개척하려는 다수 소상인의 대결 구도로 현대 자본주의의 모습이 겹쳐진다. 젊은 상인들의 연대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활약으로 결국 정의와 진실이 승리한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역대 창극단 작품 중 최다인 62곡이 쓰였다. 전통 판소리의 장단과 선율에 바탕한 작창에 국악기·서양악기가 어우러진 16인조 음악과 전자음악을 조합했다. 특히 록 사운드를 비롯한 전자음악으로 카리스마 있고 권위적인 샤일록의 특성을 표현했는데, 법정에서 그의 죄가 밝혀지며 마지막으로 발악하고 절규하는 장면에서 김준수의 폭발적인 소리가 더해져 절정을 이뤘다. 다만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전자음악이 판소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도 들었다.
올곧은 안토니오와 간교한 샤일록은 각각 유태평양과 김준수가 맡아 극의 중심을 이끈다. 바사니오는 최근 '팬텀싱어4'에 출연한 김수인, 지혜로운 여성인 포샤 역은 민은경이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