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명 '병적 중독'…2019년 362건에서 급증
2020~2022년 1606건…코로나 전보다 2배↑
'온라인 도박 차단, 예방교육, 치료 연계' 과제
[서울=뉴시스]김경록 기자 = 지난해 병적인 수준의 도박 중독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10대 청소년이 코로나19 이전보다 60%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온라인 도박 접근성 차단, 도박 중독 예방교육, 빠른 병원 치료 연계 등이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병적 중독' 혹은 '도박 및 내기에 관련된 문제'를 진단받은 10대 도박 중독 진료 건수는 총 576건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에는 362건에 불과했는데, 3년 만에 214건(59.1%)이나 급증한 것이다.
코로나19 전후 기간별로 살펴보면 2020~2022년 10대 도박 중독 진료 건수는 총 1606건으로, 코로나 전인 2017~2019년 775건에서 2.07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도박 중독' 증세에 대해 "(욕구) 조절이 안 돼 하지 말아야 할 때 도박을 하거나, 도박에 빠져 본래 해야 하는 학업 등을 거의 하지 않거나, 경제적 손실 등 부정적 결과가 발생함에도 계속 도박을 하는 경우"라며 "금액이 1000만원 이상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 사용시간이 늘어나면서 학생들의 온라인 도박 접근성이 높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인 10대 청소년은 지난해 40.1%로, 코로나 전인 2019년 30.2%에서 10% 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온라인 도박의 중독성이 오프라인 도박보다 3배나 강하다는 연구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지현·정유숙 교수와 한림대 의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윤혜 교수 연구팀이 2018년 기준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에서 도박 경험이 있는 청소년 5619명을 대상으로 '도박 문제 심각성 척도(Gambling Problem Severity Scale)'를 측정한 결과, 온라인 도박 그룹의 중독 중증도가 오프라인 도박보다 3배나 높았다. 이 연구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국제학술지 '정신의학 연구(Psychiatry Investigation)' 올해 3월호에 실렸다.
이 때문에 10대 청소년을 온라인 도박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한 제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청소년 불법도박: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토론회에서 법무법인 '내일' 오명근 변호사는 "도박 없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불법 도박 사이트 신속 차단, 계좌 지급정지, 포상제 등을 규정한 '불법온라인사행산업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불법온라인사행산업 특별법안'은 2017년 곽상도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과 2019년 정세균 당시 민주당 의원이 발의했으나,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현재는 지난 3월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해외 불법사이트를 통한 불법 유통물 접속을 즉각 차단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생들의 도박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제2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청소년 도박 예방을 위한 체계적 사업이 부족하고, 도박중독 예방교육 참여율도 여전히 저조"하다며 "청소년 도박문제 예방교육 중장기 로드맵을 2023년부터 마련하겠다"고 했다.
도박문제 예방교육 로드맵을 마련 중인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관계자는 "지난 2월 도박문제 예방교육 개선방안 연구를 발주해 최근 마쳤는데, 결과가 조금 미진해 보완 중"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관계부처와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로드맵을 수립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10대 청소년이 스스로 도박 중독임을 인식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10대 도박 중독 진료는 2020년 418건에서 2021년 612건으로 늘었는데,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운영하는 '헬프라인'의 19세 미만 상담 건수는 같은 기간 383건에서 353건으로 오히려 줄었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의 저자 오세라비 작가는 청소년 도박문제에 대한 연중무휴 상담을 지원하는 캐나다 '키즈 헬프폰(Kids help phone)'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의 아동·청소년 헬프폰 운영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감위,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으로 분산된 불법도박 신고 체계도 일원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해국 교수는 "사감위와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은 치료도 상담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으로 도박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며 "청소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학부모나 담임교사가 도박 중독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문제 학생을 발견·제보하면, 바로 정신건강과 행동문제를 다루는 보편적인 의료 시스템과 연결해주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도박 중독 의심 학생이 발견됐을 때 위(Wee)클래스 상담을 거쳐 필요한 경우 의료기관과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은 있다"며 "다만 의료기관 연계는 학부모 동의가 필요한데, 아이에게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학부모에게 건의하면 거부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학교 현장도 고충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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