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백악에서 붓이 흥하리' 1983년 일중 김충현(1921~2006)이 백악미술관 개관 기념으로 써 준 글이다.
일중의 바람처럼 40년 간 백악미술관은 서예가 이미 침체기에 접어들 무렵 서화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일중'의 기념관이자 후학들을 위해 설립한 전시 공간으로, 많은 묵객들이 거쳐간 사랑방이다.
김충현은 현재 미술관 자리에 건물을 세우고 서울의 주산(主山)인 ‘백악(白岳)’에 신선이 사는 집이자 귀한 물건들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동부(洞府)’를 붙여 ‘백악동부’라 이름 지었다. 백악미술관은 백악동부 완공과 함께 시작한 미술관으로, 백악동부의 역사는 곧 백악미술관의 역사다.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대표 김재년)이 개관 40주년을 맞아 특별전을 6월5~25일 백악미술관 전관에서 개최한다.
'서예의 흥'을 기원한 '백악필흥(白岳筆興)'을 주제로 미술관의 지난 40년 역사와 현대 서예를 살펴본다.
백악동부 기공 즈음 김충현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비롯하여, 완공 당시의 사진과 기사들, 지금까지 열린 백악미술관의 전시 연혁과, 김충현이 제자와 지인들에게 휘호해 준 글씨도 볼 수 있다.
또한 일중서예상과 일중서예우수작가상 초대전 선정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서예를 갱신하기 위한 현대 서예가들의 시도도 엿볼 수 있다. 관람은 무료.
일중 김충현은?
7세 때 안진경체를 쓰기 시작, 전서와 예서, 해서, 행서, 초서까지 한문 5체를 모두 섭렵한 서예가였다. 일제 강점기 엄혹한 시절에 한글 서예의 교본을 완성할 정도로 우리글의 보급에 앞장섰다. 특히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등 옛 판본체를 모범으로 한 고체(古體)의 보급은 기존 궁체 위주의 한글서예의 폭을 크게 넓혔다.
전국의 묘비의 비문과 동상의 이름이 대부분 그의 글씨다. '4·19의거 희생자 묘비' '권도원수 행주대첩비명' '이충무공 한산도제승당비' '예산 윤봉길의사 기념비' '백범 김구선생 묘비' '사육신묘비' '의암 손병희 선생 묘비' 뿐만 아니라 1965년 9월22일 창간한 中央日報(중앙일보)의 제호도 그의 글씨다.
김충현 호 일중(一中) 은 마음(心)에 하나(一)의 중심(中)이 서면 충(忠)이 된다는 뜻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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