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담집 '다윈의 사도들', '다윈 지능' 개정판 출간
초대 국립생태원장,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 공동위원장 역임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국내를 대표하는 진화학자이자 생태학자다. 제1대 국립생태원 원장(2013~2016)을 비롯해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2021~2022) 등을 역임한 그가 다시 한번 '다윈'을 외치며 돌아왔다. 진화학자로서 "대표작이라고 부를만한" 책 2권과 함께다.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모든 게 압축 성장하다 보니 잘하는 분야는 앞서가지만 구멍이 숭숭 나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다윈에 대한 건 뒤처져도 너무 뒤처진 나라였죠. 그래서 2005년 다윈포럼을 만들고 다윈주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거예요."
최 교수는 오랜 기간 다윈주의를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2005년 다윈포럼을 만들고 2009년 찰스 다윈의 해를 준비했고 출판사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드디어 다윈' 시리즈를 기획했다. 최근 출간한 대담집 '다윈의 사도들'과 '다윈 지능' 개정판은 그가 당시부터 진행한 프로젝트가 맺은 결실이다.
"이제 겨우 한국은 다윈 후진국을 벗어났어요."
최근 최재천 교수를 그의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만나 다윈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윈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요"
책을 통해서도 최 교수는 한국이 "다윈 후진국을 벗어난 것"에 큰 의의를 둔다. 진화론과 '다윈주의'가 대중들에게 당연하다고 여기지는 이 시대에 그는 왜 '다윈'을 이토록 강조할까.
최재천은 "다윈포럼을 열고 본격적인 작업을 하다 보니 다윈의 이론이 파고들어 가지 않은 분야라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며 "모든 우리 인간의 활동에 다윈의 이론이 스며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생물이 진화를 통해 변한다는 사실을 넘어 "더 이상 불변의 진리는 없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인지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다윈이 있다는 것"이다.
"생태학은 물론이고 결정적으로는 법학과 경제학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행동경제학(다윈경제학) 같은 분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변방 경제학이었잖아요. 그런데 최근 10년 사이 노벨경제학상은 그쪽 분야에서 다 휩쓸고 있어요. 이런 변화를 보면 다윈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대를 살아간다는 게 과연 가능하냐는 이야기를 제가 열심히 떠드는 거죠."
책은 그가 다윈을 알리기에 효과적인 매체다. 그는 "과학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과학화'라고 말하곤 한다"며 "학계에서 논문이 아닌 대중서를 쓰는 걸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에도 책을 쓰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과학자는 자기 입으로 끊임없이 과학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대중이나 정치인들이 중요한 걸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학은 얄궂은 운명을 갖고 있어요. 과학보다 중요한 게 이 세상에 없는데 그럼에도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과학 예산이 깎이고 과학계를 가만히 놔두질 않잖아요."
"코로나19로 진화학적 사고하게 됐다"…논의할 기회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 남아
최 교수는 2020년부터 방송과 글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코로나19를 진화 현상으로 바라봤다. 그는 "독성이 강하고 전파력도 있는 바이러스가 질병 대접을 받고 우리가 대응하니 그 틈새시장을 치명력은 약하고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가 차지했고, 또 걸렸는지도 모르고 돌아다닐 정도의 바이러스가 나왔다"며 "이 모든 과정이 진화학적으로 '공진화'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알파 변이부터 시작해서 오미크론 변이의 등장 등 바이러스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를 해오던 그는 그렇게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 국민들의 상당수가 알게 모르게 진화적 사고를 하게 된 것 같다"며 "의사나 바이러스 전문가도 아닌 나에게 위원장을 맡긴 건 2년 사이 코로나 현상이 진화적인 현상이란 걸 정부도 이해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엔데믹이 다가오며 기후 변화나 진화학적 사고에 대한 논의가 확장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코로나19가 한창 심할 때는 기후 변화 등에 대해 논의하기 좋은 시기였고 분위기가 좋았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며 "이번 정부에 들어서 제대로 된 기후 변화 정책이나 생물 다양성 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의 이번 대담집 '다윈의 신도들'은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브 존스 등 "12명의 국가대표급 다윈주의자"와의 만남 끝에 같은 질문으로 마무리된다. 인터뷰의 말미에 그에게 그 질문을 그대로 돌려줬다.
"다윈은 왜 중요할까"
그는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재임할 당시 생태원에 조성한 '생태학자의 길'에 남긴 문구를 인용하며 답했다.
"다윈의 기여 중에 가장 큰 것은 우리 인간을 철저하게 겸허하게 만들어 줬다는 것입니다. 다윈이 등장하며 인간도 많은 생물종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잖아요. 지금 일어나는 기후 변화나 팬데믹 모두 우리의 오만함으로부터 벌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겸허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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