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중독 연기 인상적…다큐 참고
오은영도 포기한 '금쪽이' 별명 얻어
"14년 연기, 더글로리로 보상 받아"
유니크한 얼굴이 내 색깔
"예뻐 보이기 보다 망가지고 싶어"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배우 김히어라(34)는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세계적인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이 드라마만 보고, 어딜 가든 이야기가 들렸다. 막연히 잘될 거라고 기대는 했지만, 세계 넷플릭스 TV쇼 부문 1위까지 올랐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직접 피부로 인기가 와 닿은 순간이다. 특히 이 드라마를 통해 "'김히어라가 있다'는 존재감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뮤지컬 '잭 더 리퍼'(2009)로 데뷔한 지 14년 만이다. '배드 앤 크레이지'(2021~2022)로 안방극장에 진출해 약 2년 만에 이룬 성과라서 더욱 보람을 느낄 터다.
"오디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당연히 캐스팅될 줄은 몰랐다. 새로운 인물을 찾기 위해 공연하는 분들을 많이 봤다고 하더라. 김은숙 작가님과 안길호 PD님이 '내 이름을 알고, 얼굴을 비춘다'는 것 만으로도 귀한 시간이었다. 처음 캐스팅됐을 때 감격했지만, '근데 왜 나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과 PD님이 공통으로 '욕 아니니 절대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면서 '너의 강렬하고 몽환적인 눈빛이 '사라'와 적합했다'고 하더라."
이 드라마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문동은'(송혜교)이 온 생을 걸어 복수하는 이야기다. 김히어라는 동은을 괴롭힌 학교폭력 가해자 중 한 명인 화가 '이사라'를 연기했다. 처음에는 사라보다 '박연진'(임지연)이 더 끌렸다. 오디션 보기 30분 전 5~6페이지 분량 극본을 받았다며 "누가 주인공인지, 어떤 내용인지도 몰랐다"고 회상했다. 연진이 기상캐스터 후배와 기싸움을 하다가 "이 방송국은 나한테 달에 꼴랑 220만원 주지만, 내 남편은 (방송국 광고로) 2억2000만원을 쓴단 소리야"라고 하는 신이 눈에 띄었다. "입에 착착 붙더라. 연진을 하고 싶다기보다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중 뭐 하겠어요?'라고 했을 때 그 대사를 읽었다"면서 "오디션 갔을 때는 사라를 해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많은 분이 나보고 '너무 세 보인다'고 하더라. 주·조연끼리 리딩할 때 처음 만났는데, 다들 쟤는 딱 '사라다'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나도 그랬다. 지연이가 '언니 첫인상이 그랬어'라고 하길래 '너도 그랬어'라고 했다. (임지연을 보고) '쟤는 어마어마하다'라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보통이 아니라는 느낌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다 모아 놨지?' 싶더라. 평소 캐릭터와 성격이 다른데 조화로워서 신기했다."
김히어라의 마약 중독 연기는 감탄을 자아냈다. 다큐멘터리와 마약중독자 그림을 참고했다며 "아쉬운 점만 보여서 만족하진 못했다"고 털어놨다. "초반에는 PD님이 '그런(마약 중독) 습관을 조금 줄여 달라'고 하더라. 점차 화장도 안 하고 다크서클 등으로 표현했다"며 "파트2로 갈수록 마약 증세가 점점 심해지지 않았느냐. 조사해보니 (마약 중독되면) 뇌가 점점 굳어지고, 생각의 회로가 '100개에서 8개로 준다'고 하더라. 버벅거리면서 느리게 하고, 말과 말 사이 버퍼링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사라는 감옥에 갇히는데, 목사인 아버지에게 (대마가 합법인) '네덜란드에 보내달라'며 떼쓰는 신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분이 '약쟁이 이화백'이라고 불렀는데, (파트2 공개 후) 오은영 선생님도 포기한 '금쪽이'라고 하더라"면서 웃었다. "당연히 연기하면서 '귀여워 보이고 싶다'는 없었다. 사라의 목표는 확실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빨리 (감옥에서) 나가야 하는데, 엄마·아빠가 움직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떼를 쓴 것"이라며 "극본에 '마치 엑소시스트 모습 같다'고 써있어서 꽂혔다. 약간 사탄 들린 듯 악을 썼다. 기괴하게 보이기 위해 소리를 쳤는데, 꽤 귀여워 보인 것 같다"고 했다.
명오 장례식장에서 '최혜정'(차주영) 목에 연필을 꽂는 신을 가장 고민했다. '어떻게 표현해야 정상적이지 않고 섬뜩해 보일까?' 싶었다. "처음에는 파탄처럼 외치고, '죄를 사하노라'는 식으로 설교처럼 해보려고 했다. 나와 나의 망상 속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연기했다"며 "딱 하자마자 스크립터가 와서 '언니 너무 좋았어요'라고 하더라.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괜찮나?' 싶었다. PD님이 좋아해 한 테이크로 갔다"고 귀띔했다.
극중 사라 그림 중 김히어라가 직접 그린 작품도 있다. 평소 취미로 아크릴화를 그리는데, 전시회를 할 정도로 소질이 많다. "100점 중 3점 정도 그렸다. 유튜브로 (마약중독 상태인 사람의 그림을) 많이 찾아보고 그렸다. PD님이 너무 미안한데 '날카로운 선이 너무 디테일하다. 그냥 막 칠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했다"며 "다른 사람이 스케치해 놓은 상태에서 내가 그렸다. PD님이 작품 아까우니 '전시하라'고 하더라. 막상 많은 분이 내가 그림 그리는 걸 알게 되니 부끄러워서 나중에 소소하게 전시하고 싶다"고 바랐다.
무엇보다 김히어라는 촬영하는 내내 '학폭 가해자들을 정당화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사라가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이유를 찾기보다, 극본을 믿었다. 학폭 가해 사실을 떠나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사라의 양면성과 마약 중독된 습관을 표현하면서 연기자로서 성장한 부분도 있다"고 짚었다.
"지금 이 시점에 살아내고 있는 피해자들이 용기를 낼 기회가 되지 않을까. 나를 포함해 어른들이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봤을 때 '이제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할 것 같다. 이전보다 이후가 더 중요하다. (학폭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나면 안 된다. 더글로리는 비단 학폭을 떠나서 약자와 소외된 계층에게 용기를 줬다. 난 가해자를 연기했지만, 절대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 '시청자 입장에서 연기하자'고 얘기를 나눴는데, 많은 분이 공감하고 느껴줘서 감사하다."
김히어라는 tv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시즌2로 시청자와 만날 예정이다. 극중 캐릭터 때문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탈색했는데, 사라 못지않게 매력적이었다. 요즘 자신의 외모를 보며 '유니크 하다'고 생각했다며 "'얼굴이 도화지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에 따라 얼굴이 바뀌는 게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배우로서 이목구비가 예쁘다고 할 수 없지만, 유니크함이 색깔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작품을 할 때 예뻐 보이고 싶기보다 망가지고 싶다. 탈색했을 때 놀랐지만, 내 얼굴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14년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 더 글로리를 통해 그동안 살았던 걸 보상 받은 것 같다. 배우로서 단단해졌고, 많은 분들이 나를 신뢰하는 계기가 됐다. 정말 더글로리한 작품이다. 내 인생에서 매번 이야기가 나오고, 10~20년 뒤에도 언급될 작품이지 않을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