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마을, 연해주 3·1운동 100주년 기념대회 개최
거리 가득 메운 함성과 만세…"자랑스러운 항일 역사"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제104주년 3·1절을 맞은 1일 오후 광주 광산구 월곡동 홍범도공원에서 열린 1923년 삼일만세운동기념대회 도중 호남대학교 미디어영상공연학과 재학생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23.03.01. leeyj2578@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3/03/01/NISI20230301_0019809299_web.jpg?rnd=20230301162006)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제104주년 3·1절을 맞은 1일 오후 광주 광산구 월곡동 홍범도공원에서 열린 1923년 삼일만세운동기념대회 도중 호남대학교 미디어영상공연학과 재학생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23.03.01.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국의 독립을 바랐던 조상들의 간절함이 100년이 흐른 오늘날 광주에서 재현됐다.
㈔고려인마을은 1일 오후 광주 광산구 월곡동 홍범도공원에서 '1923 삼일만세운동기념대회'를 열었다.
대회는 1923년 러시아 연해주에 자리를 잡고있던 독립운동가와 동포들이 일본군을 몰아내고 펼친 기념비적인 만세 운동을 재현하고자 열렸다.
당시 항일 투쟁 거점도시였던 연해주 우수리스크 내 신한촌에서는 1919년 3월 17일 최초의 만세 운동이 전개됐다.
연해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은 이를 기점으로 지역 독립운동가와 한인 동포들에 대한 탄압 수위를 올렸다.
일본군은 이듬해인 1920년 4월 3일 신한촌을 습격하고 한인 지도자 300여 명을 수장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글 학교를 불태우고 한인 동포들을 여기에 가두는 방식으로 학살을 서슴치 않았다.
이같은 일본군의 만행탓에 신한촌에서는 1922년까지 3·1운동을 재현하거나 기릴 수 없었다.
연해주에서 3·1운동을 기릴 수 있게 된 것은 1922년 10월 독립군과 러시아 혁명군이 일본군 토벌 작전을 성공리에 마치면서부터다.
한인 동포들은 일본군이 연해주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을 확인, 이듬해부터 다시 3·1운동을 기렸다.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짖는 동시에 조국의 독립을 바라는 성대한 독립문을 만드는 등 1919년 이후 3년 넘도록 일본군에 억눌려온 울분을 토해냈다.
조국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뭉쳤던 연해주 내 한인 동포들은 1937년 스탈린의 탄압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돼 뿔뿔이 흩어졌다.
고려인마을은 이날 대회가 연해주 한인 조상들이 펼친 조국애를 뜻한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연해주에서 열린 3·1운동을 재현하는 행진이 열리고 대한민국 근현대사 100년을 연극으로 압축한 무대가 선보여졌다.
지역 역사문화가와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 등 10명은 1919년 민족대표 33인이 발표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지난해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탈출, 광주에 정착한 고려인들도 행사에 참여해 항일 운동에 나섰던 조상들의 뜻을 기렸다.
차 게오르기(64)씨는 "여태 몰랐던 역사를 이제서야 알게 돼 부끄러우면서도 감사하다"며 "조상들이 고국 독립을 위해 분투했다는 사실이 감명깊다. 고려인이기에 앞서 같은 조상을 둔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정 마르게리타(62·여)씨는 "할머니 등으로부터 강제 이주 역사를 들었지만 그에 앞서 3·1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며 "조상의 땅에 와서 몰랐던 역사들을 깨우치고 있다. 한민족 한핏줄이라는 점을 깊이 새기며 살아가겠다"고 했다.
신 대표는 "대한민국 사회에 녹아든 고려인들이 함께 모여 같은 조상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어 영광스럽다"며 "우리 역사를 모른 채 우크라이나를 떠나오는 고려인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자랑스러운 항일 역사를 가르쳐 떳떳한 조상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일깨우겠다"고 다짐했다.
㈔고려인마을은 1일 오후 광주 광산구 월곡동 홍범도공원에서 '1923 삼일만세운동기념대회'를 열었다.
대회는 1923년 러시아 연해주에 자리를 잡고있던 독립운동가와 동포들이 일본군을 몰아내고 펼친 기념비적인 만세 운동을 재현하고자 열렸다.
당시 항일 투쟁 거점도시였던 연해주 우수리스크 내 신한촌에서는 1919년 3월 17일 최초의 만세 운동이 전개됐다.
연해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은 이를 기점으로 지역 독립운동가와 한인 동포들에 대한 탄압 수위를 올렸다.
일본군은 이듬해인 1920년 4월 3일 신한촌을 습격하고 한인 지도자 300여 명을 수장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글 학교를 불태우고 한인 동포들을 여기에 가두는 방식으로 학살을 서슴치 않았다.
이같은 일본군의 만행탓에 신한촌에서는 1922년까지 3·1운동을 재현하거나 기릴 수 없었다.
연해주에서 3·1운동을 기릴 수 있게 된 것은 1922년 10월 독립군과 러시아 혁명군이 일본군 토벌 작전을 성공리에 마치면서부터다.
한인 동포들은 일본군이 연해주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을 확인, 이듬해부터 다시 3·1운동을 기렸다.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짖는 동시에 조국의 독립을 바라는 성대한 독립문을 만드는 등 1919년 이후 3년 넘도록 일본군에 억눌려온 울분을 토해냈다.
조국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뭉쳤던 연해주 내 한인 동포들은 1937년 스탈린의 탄압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돼 뿔뿔이 흩어졌다.
고려인마을은 이날 대회가 연해주 한인 조상들이 펼친 조국애를 뜻한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연해주에서 열린 3·1운동을 재현하는 행진이 열리고 대한민국 근현대사 100년을 연극으로 압축한 무대가 선보여졌다.
지역 역사문화가와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 등 10명은 1919년 민족대표 33인이 발표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지난해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탈출, 광주에 정착한 고려인들도 행사에 참여해 항일 운동에 나섰던 조상들의 뜻을 기렸다.
차 게오르기(64)씨는 "여태 몰랐던 역사를 이제서야 알게 돼 부끄러우면서도 감사하다"며 "조상들이 고국 독립을 위해 분투했다는 사실이 감명깊다. 고려인이기에 앞서 같은 조상을 둔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정 마르게리타(62·여)씨는 "할머니 등으로부터 강제 이주 역사를 들었지만 그에 앞서 3·1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며 "조상의 땅에 와서 몰랐던 역사들을 깨우치고 있다. 한민족 한핏줄이라는 점을 깊이 새기며 살아가겠다"고 했다.
신 대표는 "대한민국 사회에 녹아든 고려인들이 함께 모여 같은 조상을 기리고 그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어 영광스럽다"며 "우리 역사를 모른 채 우크라이나를 떠나오는 고려인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자랑스러운 항일 역사를 가르쳐 떳떳한 조상을 두고 있다는 점을 일깨우겠다"고 다짐했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제104주년 3·1절을 맞은 1일 오후 광주 광산구 월곡동 홍범도공원에서 한 고려인 아이가 태극기를 집어들기 위해 손을 뻗고 있다. 2023.03.01. leeyj2578@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3/03/01/NISI20230301_0019809327_web.jpg?rnd=20230301162129)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제104주년 3·1절을 맞은 1일 오후 광주 광산구 월곡동 홍범도공원에서 한 고려인 아이가 태극기를 집어들기 위해 손을 뻗고 있다. 2023.03.01.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