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1세대 전위예술가 이건용과 70년대 풍미
백아트서울서 개인전…197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전시
5월 국립현대미술관 단체전~내년 LA 해머미술관서 전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예술은 착란의 그림자‘(2001), ’예술은 무광의 아우라’(2001), ‘어디 예술 아닌 것 없소’(2007). 그의 어록은 세월이 지날수록 생생하다.
성능경(79). '한국 미술의 1세대 전위예술가'다. 이 수식어는 유행이 지나고 잊혀도 그를 되살려내는 힘이다.
1970년대를 풍미했다. 지금은 뒤로 그리는 그림 '하트'로 유명한 이건용 작가와 한패였다. 단색조 회화가 국내 화단을 지배하던 1970년대 초 전위미술로 화단을 깜짝 놀라켰다. ST그룹 회원으로 Space and Time의 약자인 모임 답게 공간과 시간이라는 개념을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성능경의 대표작은 '신문 오리기 퍼포먼스'다. '1974. 6. 1 이후'라는 제목으로 벽면에 하얀 패널 4장 준비하고, 신문을 네 장 붙이고, 매일 가서 기사만 오려내는 '이벤트'였다.
신문과 사진 등의 매체를 주로 활용해 주제를 전달하는 그의 작업은 탈장르적인 개념미술로 분류된다. 시대에 따라서는 권력에 대한 저항, 신체 회복의 표현, 일상에 대한 주목이다.
한국미술 1세대 전위예술가..."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1세대 전위예술가로 유명세를 탔지만 세월은 급변했다. 80년대 민중미술 대세속 성능경에 참혹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하지만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배우 고 강수연의 말은 그에게 딱 맞는 말이었다. 작가로서 상업적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2015년 남산한옥골 전시때 성능경을 만난 윤진섭 평론가가 '그 배고픈 시절 극심한 공항장애를 겪고 정신병원 통원치료까지도 했는데 돈이 되는 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해봤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내 예술이 중요했어요. 예술을 한다고 해서 돈 버는 게 나쁠 건 하나도 없죠. 돈 버는 게 왜 나쁘겠습니까. 다만 예술로 돈을 벌고자 했을 때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영어로 창녀라는 글자인prostitute의 두 번 째 뜻이 뭐냐면, “돈을 위해서 예술의식을 굽히는 화가”라고 나와 있어요. 언어라는 게 다 역사성이 있는 거 아닙니까? 내가 돈을 목적으로 예술 행위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prostitute가 되는 지름길인 거죠. 그런데 그런 지름길을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내가 예술가라고 타인에게 명칭을 부여받고 스스로 주장할 수 있으려면, 그것은 조금 탈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려서 파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다만 그것만이 목적이 되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팔순 생애 두 번째 상업화랑서 개인전...사진·퍼포먼스 작가 자존감
'성능경의 예술행각'을 펼치는 백아트 서울 전시는 그의 상업화랑에서 생애 두번째 전시다. 1991년 대구 삼덕갤러리에서 개인전 'S씨의 자손들-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을 가졌지만, 그의 아방가르드 미술은 미술계의 관심을 받는 대상이 아니었다.
미술관에서는 개인전을 했지만 다 합쳐도 개인전은 55년간 겨우 5회에 불과하다. 2009년에서야 생전 처음 아르코 미술관에 작품을 판매했다는 놀라운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물론 29년간 계원예술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켰고,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인이 든든한 후원자로 곁을 지킨 덕분이다.
상업적 성공과 거리가 먼 것은 작업 탓(?)이기도 하다. 주로 사진 매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품에서 에디션이 없는 유니크 피스(Unique Piece)만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로 스캔을 받아서, 에디션을 생산할 수는 있지만 작가는 이것은 오리지널이 아니라고 본다.
예술은 꿈꾸는 자유...55년간 파격 충격 퍼포먼스
성능경 개념미술은 천박성으로 힘을 낸다. 조수진 미술사학자는 "70~80년대 정신적인 것의 추구에 몰두하던 당대 주류미술과는 대조되는, 그것의 일상적인 성격에서 비롯되었다"며 "그의 예술의 개념은 신문을 읽고, 먹고, 운동하고, 담배 피우는 등의 인간 삶의 수행에 뿌리를 두었기에 서구식도, 일본식도 아닌 성능경만의 개념이었다"고 평가했다.
퍼포먼스의 즐거움은 아픔 뒤에 찾아왔다. 1990년대 잠시 공황장애를 앓았는데,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하루에 응급실에 3번 실려가기도 했을 정도였다. 1980년대에 미술가로서 전시할 기회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오히려 전시가 많았던 1990년대에 아팠던 것에 대해 작가는 숨겨두었던 마음의 병이 드러났던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아프고 나서 퍼포먼스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 삶이 힘들지, 예술은 쉽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예술은 빈사상태이거나 폐기처분되었다. 나는 그런 예술을 치유하고 소생시키기 위해 삶을 모험하면서 아직 예술 아닌 것을 찾아 나선다"고 했다.
"예를 든다면 신문 읽기·오리기, 돈 세기, 스트레칭 하기, 사탕·콜라·케이크·떡 먹기, 이빨 쑤시기, 줄넘기, 경구·신문 일상영어 읽기, 광고·영화 카피 읽기, 훌라후프 하기, 아령 하기, 고무줄 새총으로 탁구공 쏘기, 트렁크 끌고 다니기, baby oil 바르기, 박박 긁기, 부채질하기, 옷 갈아입기, 폴라로이드 촬영하기, 오줌 누기·마시기, 신문의 일상영어 읽기, 면도크림 바르기, 자위행위하기, 구음하기, 물구나무서기 등등인데 이는 삶의 일상에서 발굴된 망각의 파편들이다.”
지금도 예술이냐 아니냐의 논란을 일으킬 것 같은 그의 작업은 기행 같은 행각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아무것도 아닌 듯’ 하던 성능경의 예술행각은 이제 와 돌아보니, 거대한 의미의 숲을 이룬 것"이라며 "고수의 수에 넘어갔다"고 했다.
백아트서울 전시...'아무것도 아닌 듯…' 주목
백아트 서울 전에서는 1970~1980년대 초반의 대표적인 오리지널 사진 작품들부터 최근작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끽연'(1976), '수축과 팽창'(1976), '손'(1976) 등과 백두산 생수병을 이용한 '백두산'(2018), '그날그날 영어(Everyday English)>(2003-2018)' 연작, 여전히 매일 작업하고 있는 '밑 그림'(2020) 연작 등을 선보인다.
특히 '그날그날 영어'는 수년간 신문에 연재되었던 영어 교육 섹션을 스크랩하고, 여기에 작가가 직접 공부한 흔적을 남기고 그림을 남긴 연작이다. 초기에는 심플한 형태를 보였으나, 점차 글자와 콜라주가 정교해지고 한 장의 또 다른 작품이 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개막일인 22일 오후 5시 성능경의 진짜 퍼포먼스가 열린다.
“야! 이 나이에 똑같은 거 하기도 어렵다."
즉흥 이벤트와 대중의 상식을 뛰어넘는 행위들로 충격을 선사한 퍼포먼스 뚝심 대가는 여전히 '싱싱한 악동'이다.
“나는 살아 있는 예술로써 여러분의 피부와 골수에 소름 돋게-끼치게 하도록 하는 것이 의도이고 그것이 내 예술의 힘이다.” 전시는 4월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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