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령' 일본 경찰 무라야마 준지 역
강도 높은 액션 일본어 연기까지 소화해
"나이 드니까 액션 연기 오히려 편해져"
"역도산 연기 때 일본어해 조금은 익숙"
"日 제복 입고 새로운 모습 보이고 싶어"
"인간에 대한 고민 캐릭터에 연민 느껴"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나이를 먹으니까 액션 연기가 더 편해요."
설경구(56)는 의외로 액션 연기를 많이 한 배우다. 과거엔 '실미도' '공공의 적' 시리즈나 '해결사' '타워' '스파이' 등에서, 최근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 '야차' 같은 영화에서 강도 높은 액션을 소화했다. 그와 함께 자주 거론되는 이른바 연기파 배우들의 필모그래피와 비교하면 유독 몸을 많이 쓰는 역할을 자주 맡았다. 설경구는 이번에 선보이는 새 영화에서도 젊은 배우들도 쉽게 하기 힘들어 보이는 액션 연기를 했다. "액션은 할 때 이어서 쭉 하게 돼요. 이상하게 그런 작품을 제가 계속 하게 되더라고요. 한동안 액션 연기를 안 했는데, 최근에 많이 하게 되네요.
오는 18일 영화 '유령' 개봉을 앞두고 설경구를 만났다. 그는 "액션이 재밌어서 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가짐에 따라 재밌을 수도 있다는 걸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알게 된다"고 했다. "예전엔 힘들면 힘들기만 했어요. 표정에서도 힘든 게 묻어났고요. 근데 요샌 안 그래요.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어요. 액션을 하면 할수록 그렇더라고요."
이해영 감독이 연출한 '유령'에서 조선총독부 통신과 감독관 '무라야마 준지'를 연기했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일본 경찰이 총독부에 잠입한 독립 투쟁 조직 흑색단의 스파이를 색출하는 과정과 이에 맞서는 흑색단원들을 그린다. 준지는 스파이 용의자 5명 중 1명으로, 그를 의심하는 경호대장에겐 자신이 유령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흑색단원에겐 자신이 유령이라고 주장하는 등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준지는 경호대장 '카이토', 흑색단원 '박차경'과 수차례 몸을 맞부딪힌다.
'유령'에서 설경구의 액션이 다른 작품과 달랐던 게 있다면 여성 배우와 주먹을 맞교환했다는 점이다. 실제 분량만 보더라도 카이토 역의 박해수보다는 박차경 역의 이하늬와 마주해 서로 피를 보는 장면이 훨씬 길다. 그런데 설경구는 이하늬와 액션 연기가 "오히려 편했다"고 말했다. "제가 통뼈라서 손이 매워요. 처음엔 혹시나 제가 다치게 할까봐 걱정했죠. 그런데 이하늬씨가 정말 잘 받아주더라고요. 부담이 없었어요. 게다가 이하늬씨가 표정이 항상 밝아요. 연기가 끝나면 힘들어 하는 게 아니라 웃죠. 때리고 나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게 해주더라고요. 고마웠어요."
준지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액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일본인 역을 맡았기 때문에 유창한 일본어 연기를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설경구가 연기한 캐릭터는 한국어에 유창하다는 설정 덕분에 대사의 3분의1만 일본어로 하면 됐다는 점이다. 물론 이 또한 적은 양은 아니지만, '역도산'(2004)에서 일본어 연기를 이미 경험해본 게 큰 도움이 됐다. "일본어 선생님들하고 계속 연습했죠. 그 방법 밖에 없으니까요. 언어라는 게 참 어려워요. 현장에서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발음도 있거든요. 그런 건 후시 녹음도 했어요. 그래도 '역도산' 때 이미 고생을 했으니까, 덜 힘들었던 건 있어요. 제 일본어가 꽤 괜찮아요."
어렵지 않은 연기가 없다지만, 액션과 일본어를 동시에 준비해야 했던 '유령'은 분명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설경구는 큰 망설임 없이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다. 그는 "준지가 입는 제복이 출연을 결정하는 데 큰 요소였다"는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배우들은 똑같은 연기가 반복되는 걸 싫어하잖아요. 당연히 저도 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어쨌든 제가 연기하는 거니까 완전히 다르기가 힘들다는 거죠. 어쩔 수 없이 제 연기가 그 전에 했던 것들과 비슷해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시대로 들어가서 새로운 착장을 하게 되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그간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설경구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출연하는 건 '유령'이 처음이다.
설경구는 그가 연기하는 모든 캐릭터에 연민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연민이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이라는 얘기였다. 설령 그 인물이 일제강점기에 총독부에서 일하는 일본인인 준지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만약에 준지를 '그냥 나쁜놈'으로 여긴다면 연기하기가 어렵겠죠. 이 인간이 왜 이렇게 돼버렸는지 생각해보는 게 연기이고, 그때 연민이 생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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