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15살 여중생 고문같은 폭력 피해…청주시내 촬영지 관심
"안타깝다" 공감하며 공분도…"가해자 잘 산다더라" 등 신상털기 조짐
[청주=뉴시스] 연종영 기자 = 넷플릭스가 세계 190여 개국에 서비스하는 드라마 '더 글로리'(김은숙 극본, 안길호 연출)가 17년 전 충북 청주에서 벌어진 '고데기 사건'을 소환했다.
10일 현재 16편 중 절반인 8편(파트1)만 공개했는데도 단숨에 세계 20여 개국에서 스트리밍 최상위권에 뛰어올랐다. 이 드라마에 등장한 '고데기 온도 체크'라는 이름의 충격적 학교폭력 소재는 뉴시스가 세상에 처음 공개한 것이다.
뉴시스는 2006년 5월29일 오후 <"친구들이 무서워요" 여중생의 절규>란 제목의 단독 기사를 낸 후 후속기사 10여 건을 보도했다.
당시 기자는 단골 사진관에 들렀다가 인화기 위에 놓인 사진 20여 장을 우연히 발견했고, 사진 인화를 의뢰한 40대 여성(학교폭력 피해자의 이모)을 만나며 끔찍한 사건 속으로 들어갔다.
청주시내 S병원에서 치료받던 여중 3학년 A양은 꼬리뼈가 튀어나오고, 화상 정도가 심해 5~6주간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인화기 위에 놓여있던 사진 속 상처보다 훨씬 심각했다. 가족과 취재진의 간곡한 설득 끝에 A양은 생지옥 경험을 털어놨다.
"한 달 가까이 친구들에게 폭행당했어요. 돈을 가져오라고 협박했죠. 그들이 한짓은 고문이었습니다."
A양은 미용기구(고데기)와 옷핀, 책으로 입은 팔·다리·허벅지·가슴 부위 상처를 내보였다. 그녀는 "수일 간격으로 고데기 온도 체크가 진행됐기 때문에 상처가 아물 틈이 없었다"라며 "심지어 아물던 딱지를 손톱으로 떼어버리는 ‘의식’ 같은 형벌도 자행했다”고 울먹였다.
보도 직후 경찰 수사가 빠르게 진행됐고, 주범인 가해자 B양은 구속됐다. 교내 폭력이 자행되는 오랜 기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학교와 교사들은 행정처분을 받았다. 시민사회단체는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세우라고 교육당국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폭력 소재가 고열을 뿜어내는 미용도구였다는 점, 범죄가 장기간 잔혹하게 자행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전국적 이슈가 됐다. 잊혀졌던 이 사건은 '더 글로리'를 통해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극중 촬영장소로 중앙공원, 은행나무 압각수, 청주교대, 동남지구 상가 등이 등장하자 고데기 폭행사건은 재차 고개를 들었다.
청주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드라마 속의 교복과 그 학교 현재 교복이 비슷하다’, ‘가해자가 지금도 잘살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는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신상털기 직전까지 가면서 2차 가해 우려도 나온다.
한 글쓴이는 "이제 33살 누군가의 엄마가 됐을 수도 있는 가해자의 이름이 온라인 공간에서 떠돈다. 사실인지 허위인지도 모른다"면서 "드라마에 대한 지나친 몰입이 또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고 적었다.
실제 사건과 드라마를 비교해보니 다른 점도 보인다. 가해자들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장소가 체육관으로 설정됐지만, 실제로는 교실이었다. 교실 책상과 벽에 붙은 콘센트가 고데기를 폭행도구로 사용하는 보조 장치였다.
극중에선 주인공이 편모슬하의 외동딸로 나오지만, A양에겐 아버지가 있었다.
당시 학교폭력 관련 인물들의 비극적 상황은 더 있었다. 하지만, 뉴시스는 관련자의 사법처리와 교육당국의 재발방지대책 발표 후 추가 보도를 멈췄다.
드라마보다 더 잔혹한 사실을 알리기엔 A양의 상처가 너무나 커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