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서해 공무원 피격', 첩보 삭제 혐의
7월 박지원 고발…검찰, 5개월 만에 소환해
박지원 혐의 부인에 檢과 마라톤 조사 예상
유족은 "文 지시 문제 없었는지 규명해야"
[서울=뉴시스]이기상 정유선 기자 =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14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정원이 그를 첩보 보고서 삭제 지시 혐의로 고발한 지 5개월 만의 소환이다.
같은 날 오후 피살된 공무원 유족 측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검찰에 고소했다. 유족 측은 사건 당시 관계 기관의 보고를 승인했다고 밝힌 대통령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이날 오전부터 박 전 원장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 중이다.
박 전 원장은 해양수산부 공무원이었던 고(故) 이대준씨가 서해상에서 피격·소각됐다는 첩보가 들어온 직후 열린 2020년 9월23일 새벽 1시 1차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이 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 등 46건의 자료를 무단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이날 오전 9시50분께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박 전 원장은 심경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개혁된 국정원을 그 이상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답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나 서훈 실장으로부터 어떠한 삭제 지시도 받지 않았고, 국정원장으로서 직원들에게 무엇도 삭제하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당시 국가안보실 등이 이씨가 '자진 월북'을 했다고 결론 내린 것에 대해서도 "분석관의 분석을 절대적으로 신임한다"며 "우리 국정원 직원들이 업무를 제대로 했다고 판단한다, 신뢰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은 지난 7월6일 박 전 원장이 노은채 전 국정원 비서실장을 통해 첩보 삭제를 지시했다며 그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국정원은 첩보 보고서 삭제 지시 시점을 2020년 9월23일 오전 9시30분 전후 열린 국정원 정무회의 후로 명시했다. 박 전 원장이 청와대 회의에 불려간 뒤 당시 노 실장을 통해 첩보 삭제를 지시했다는 것이 국정원의 주장이다.
검찰은 1차 관계장관회의에서 서 전 실장 주도로 '보안을 유지하라'는 취지의 피격·소각 사실 은폐 시도가 있었고, 같은 날 오전 8시께 국가안보실에서 근무하던 청와대 행정관 A씨와 다른 행정관 B씨를 거쳐 국정원 과장급 직원에게도 이런 지시가 전달됐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원장은 혐의를 부인하면서 사건이 벌어진 2020년 9월22일 밤 서 전 실장에게 자신이 직접 피격·소각 정황을 전달했다는 점도 강조한 바 있다. 국정원장은 정책적 판단이 아닌 정보 전달을 하는 직책이기에 확인된 첩보 등을 모두 전달해 역할을 다했다는 것이다.
혐의를 부인했던 서욱 전 국방부장관이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에 대한 조사가 2~3일에 걸쳐 12시간 가까이 진행된 점을 고려하면, 이날 박 전 원장 조사도 장시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조사 뒤엔 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홍희 전 해경청장, 서 전 장관, 서 전 실장 모두 소환조사를 받은 뒤 구속영장이 청구됐었다.
박 전 원장 소환으로 이번 사건 수사가 종결에 가까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날엔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까지 검찰에 출석하며 주요 피고발인들에 대한 조사는 마무리 되어가는 모양새다.
문 전 대통령 조사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점쳐지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날 오후 이씨의 친형 이래진씨는 서울중앙지검을 찾아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직무유기·허위공문서작성·직권남용 등 혐의 고소장을 제출했다.
유족 측 변호사는 문 전 대통령이 이씨 사망 전 서면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북한에 구조요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직무유기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씨 사망 이후 해경이 이씨에 대해 자진 월북한 것으로 단정해 발표한 점, 국방부가 "북한군은 비무장 상태의 고(故) 이대준 씨를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에서 "시신 소각 추정"으로 발표 내용을 변경한 점과 관련해서도 문 전 대통령에게 최종 승인자로서의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날 이래진씨는 "(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안보라인에서 올라온 보고에 대해 지시·승인을 했다고 했다"며 "그 지시와 승인이 국민을 위해 수행됐는지, 문제는 없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일 "서해 사건은 당시 대통령이 국방부와 해경, 국정원 등의 보고를 직접 듣고 보고를 최종 승인한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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