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할인·관리비 지원 등 파격 조건 내걸고 분양 총력전
건설업계, 잇단 금리인상·주택 매수 위축·자금경색 '삼중고'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마진을 최소화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계약률을 유지해야 유동성 위기를 피할 수 있어요."
지난 28일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분양을 더 미루면 금융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올해 안에 일부 물량이라도 털어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자금 조달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서라도 계약률을 끌어올려 자금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아파트 분양시장 비수기인 연말에 때 아닌 물량이 쏟아지고 있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이른바 '로또판'으로 불리던 분양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건설사들이 앞다퉈 물량 공세에 나서면서 이달 분양 물량이 지난해 대비 50% 가까이 늘었다.
부동산시장 분석업체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11~12월 전국에서 분양 예정인 일반분양 물량은 총 8만6158가구(임대 제외·11월은 기분양 물량 포함)로 나타났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의 분양 예정인 곳은 총 40개 단지, 3만7740가구(일반분양만 2만9094가구)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총 가구수는 약 1.8배, 일반분양은 1.6배 많다. 실제 분양 물량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예년과 다르게 분양 물량이 급증했다.
건설사들이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금융 비용이 증가하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환 대출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자금 확보를 위한 밀어내기 분야에 나서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내년까지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면서 올해보다 내년 분양시장이 더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들은 분양가를 할인하거나 대출 이자 지원, 분양가 원금보장제, 관리비 지원 등 특별 계약조건을 내걸고 분양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형 건설사도 예외가 아니다. GS건설은 서울 은평구 사업장에 대해 중도금을 전액 무이자를 제공하고 있다. DL건설도 경기도 탄현면 사업장의 계약금을 500만원으로 낮췄다.
건설사들이 파격 조건으로 밀어내기 분양에 나선 이유는 금리 인상으로 주택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자칫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 지수는 70선이 무너진 67.9로, 지난 2012년 8월 이후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면서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양 일정을 미뤘는데, 내년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여 서둘러 분양에 나섰다"며 "일부 미분양을 감소하더라도 올해 안에 가능한 분양 물량을 털어내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토로했다.
분양시장에선 미분양 물량 꾸준히 쌓이고,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 부담 증가로 청약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올 연말까지 밀어내기 물량이 증가하면서 미분양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9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4만1604가구로 집계됐다. 전월(3만2722가구) 대비 27.1%(8882가구) 급증했다. 수도권은 7813가구로, 전월(5012가구) 대비 55.9%, 지방은 3만3791가구로 전월(2만7710가구) 대비 21.9%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분양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앞다퉈 분양에 나선 것은 향후 분양시장이 더 악화할 것이란 판단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미분양이 늘고, 주택 수요가 감소한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공격적인 분양에 나선 이유는 금리 상승기가 이어지면서 향후 분양시장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며 "금리 인상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악재가 겹치면서 분양시장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갈수록 금융 부담이 증가하면서 건설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의 주택 공급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유동성과 자본 규모 등을 고려할 때 건설사들이 미분양보다 현금 흐름 둔화를 더 우려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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