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 후 회사채 발행 '뚝'
긴축 불확실성 여전해 불안감 연장
"자금 경색 여파 당분간 지속될 것"
연말까지 ABCP 만기도래액 26.9조
[서울=뉴시스] 박은비 기자 = 정부가 레고랜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미상환 사태로 불거진 단기금융시장 발작 대응에 나섰지만 시장에서는 좀처럼 위기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가 적지 않은 데다 불안 심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24일 KB증권에 따르면 당장 다음달 만기가 도래하는 PF ABCP는 13조7000억원이다. 현재부터 올해 말까지 만기도래액은 26조9000억원으로 이중 A2 이하는 7조8000억원에 이른다.
PF ABCP 발행 규모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였다. 지난 2020년에는 주간 평균 2조3000억원, 지난해는 주간 평균 3조원 발행됐다. 올해는 주간 평균 4조1000억원 발행된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회사채 만기 도래액 규모가 70조원에 육박해 시장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긴축 불확실성이 여전해 불안이 연장됐다는 시각이다. 올해 회사채를 발행해야 하지만 발행 시기를 내년 초로 미룬 회사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대호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단기 자금 경색 사태가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측면이 크지만, 본질적으로는 긴축 경로에서 '마켓 런'이 발생한 것"이라며 "채무가 과다한 상태에서 긴축의 불확실성이 마켓 경계감으로 표출돼 연쇄 하락하는 효과가 극대화됐고, 이 과정에서 가장 약한 연결고리인 PF ABCP부터 타격을 받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정부의 50조원 이상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가동 발표에 대해 어느 정도 단기자금 경색을 해소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이날부터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20조원,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원, 주택도시보증공사·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레고랜드가 사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 PF ABCP에 지방자치단체인 강원도가 보증을 섰다가 보증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밝혀 투자 심리가 급격하게 냉각된 영향이다. 조달시장에도 충격이 그대로 전해져 회사채 발행이 급감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공모회사채 수요예측 규모는 총 65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 감소한 5조5000억원에 그쳤다. 경쟁률은 전년 동기 대비 152%포인트나 쪼그라든 196%를 기록했다. 레고랜드 사태 발생 직후 발행된 회사채 규모도 한 달 전 대비 반토막났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채안펀드,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등은 모두 현재 유동성 고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시장 내 기존 금융회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재원을 확보하는 조치로 시장 전반의 유동성 경색 해소에 다소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채안펀드 캐피탈 콜에 응해야 하는 증권사들은 정작 자금 지원이 필요한 회사들로 채안펀드 캐피탈콜에 대응한 자금 조성 과정에서 자금시장 경색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은행도 채안펀드 재원 조성을 위해 은행채 발행을 늘리면서 자금시장에 수급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단기자금 시장을 거쳐 크레딧으로 확산되는 불안 심리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급격히 위축된 자금 경색 여파가 당분간 채권시장에서 지속될 전망"이라며 "상대적으로 크레딧 위험에 노출되지 않은 국채 역시도 전반적인 채권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로 상당한 부담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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