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합·구타 일상, 탈출하다 사망…'피해자 5000여명' 선감학원 무슨 일이

기사등록 2022/10/20 18:08:06

최종수정 2022/10/20 18:09:34

진실화해위 "권위주의 시대 인권침해 국가 책임"

일제 때 아동수용소…경기도가 1982년까지 운영

"최대 5400명"…생활기록부로 사망자 추가 확인

'농사·양잠·염전' 아동 강제노역 시켜 운영비 충당

신체·정신적 고통에 생활고…"대통령 사과 바라"

[서울=뉴시스] 선감학원 기록사진. 2019.09.10 (사진 =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서울=뉴시스] 선감학원 기록사진. 2019.09.10 (사진 =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배가 고파서 수수 이삭을 주워먹다가 선생님에게 몽둥이로 눈 옆을 맞고 찢어져서 세 바늘을 꼬매 실명할 뻔 했죠. 추수 뒤에 땅에 떨어진 것을 먹은 게 그렇게 큰 죄가 됩니까…"

'선감학원' 피해자 중 하나인 김모씨는 20일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기자회견에 참석해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진화위는 이날 선감학원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으로 규정하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부랑아를 교화한다며 일제가 세운 선감학원은 해방 후에도 국가가 운영했다. 최소 수천명이 거쳐간 선감학원에서는 기합과 구타, 강제노역이 일상으로 벌어졌고, 최소 수십명이 생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서울=뉴시스] 선감학원 기록사진. 2019.09.10 (사진 =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서울=뉴시스] 선감학원 기록사진. 2019.09.10 (사진 =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걸핏하면 폭행에 성추행·강간 피해도…피해자 5000명 안팎 추정

선감학원은 일제가 설립한 아동 강제수용소로, 해방 후 경기도가 이어받아 운영했다. 원장도 경기도 지방사회사무관이 맡았다.

1965년 조례 개정 때는 원생 수용 대상을 13~18세로 제한했지만 10세 미만 아동도 계속 수용되는 등 파행적 운영이 이어졌다. 특히 원아들은 수시로 구타, 기합을 받았고 강제노역에도 동원됐다고 한다.

개원부터 폐원까지 선감학원에 수용된 아동의 수는 원아대장으로만 4689건이나, 실제는 50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진승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경기도 자료까지 하면 5300~5400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일명 '원산폭격', '한강철교', '줄빠따' 등 체벌목적의 단체기합과 폭행이 다반사였다는 게 피해자들의 진술이다. 경기연구원이 지난 2020년 12월 발표한 피해 사례 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93명 중 대다수가 기합(93.3%)과 구타(93.3%), 언어폭력(73.3%)을 겪었으며, 성추행이나 강간을 당한 경우도 각각 48.9%, 33.3%로 조사됐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2022.10.20.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2022.10.20. [email protected]

'직업교육' 명목으로 염전 등 강제노역…숙소는 0.35평

선감학원에서는 직업교육이란 명목 하에 밭농사, 논농사, 양잠, 축산, 염전 등의 아동 강제노역이 이뤄졌다. 학생은 오전 수업이 끝나면 오후부터 모두 노역을 했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동은 하루 8시간, 양잠의 경우는 야간 노역까지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특별회계를 설치하고 아동 강제노역에서 수익으로 운영비를 충당한 것도 확인됐다. 1979년 선감학원이 작성한 사업계획 세입항목에는 실습장 수입, 축산물 수입, 석화양식 수입 등이 확인됐으나 세출에 원생 인건비 항목은 따로 없었다.

아동을 강제노역에 동원했지만 생활 환경은 열악 그 자체였다.

숙소는 1인당 0.35평(1.15㎡) 수준으로 한 방에 30여명을 몰아넣은 탓에 지그재그로 누워 잘 수밖에 없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주식은 꽁보리밥, 강냉이밥이었고 부식은 오이지, 단무지, 김치 뿐이었다.

앞선 김씨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굶주린 원생들은 불시에 찾아오는 가혹한 체벌까지 견뎌내야 했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이 발표를 등고 있다. 2022.10.20.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이 발표를 등고 있다. 2022.10.20. [email protected]

탈출 위해 죽음도 불사…묘역 150기 추가 발굴 필요

기존에 알려진 선감학원 사망자는 24명이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가 선감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분석한 결과 5명의 사망자가 추가로 확인돼 총 29명으로 늘었다.

원아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진 사례가 상당수일 것으로 보인다.

허모씨는 1964년 2~3월 선감학원 수용 중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원아대장에는 2월3일 위장병으로 의무실에 갔다고만 기재돼 있었다. 하지만 선감초 생활기록부에는 그해 4월1일부로 사망해 퇴학 처리됐다는 기록이 나왔다.

김모씨의 경우 1973년 3월1일 선감초 1학년 입학 기록만 있고 퇴소일 등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기록부에는 그해 7월8일 학원 염전 저수지에서 익사해 자연퇴학됐다고 기재돼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원아대장에서 퇴소 사유 중 탈출은 17.8%(824명)에 달했다. 그런데 선감도 주변 서해 갯벌 물살이 센 데다가 수심이 깊어 상당수는 익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자는 추후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진실화해위의 설명이다. 선감동 일대의 피해자 유해 매장 추정지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봉분 140~150기 중 일반인 묘는 10여기 이하로 추정된다. 이미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5개의 봉분에 대한 시굴을 진행한 결과 유해 5구와 치아 68개, 단추 6개를 찾아낸 바 있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선감학원 피해자들에게 사과 및 위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10.20.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선감학원 피해자들에게 사과 및 위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10.20. [email protected]

치료되지 않은 상처…절반 이상이 극단선택 시도 경험

선감학원이 폐쇠된지 40년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었다.

피해 신청인 중 99명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퇴소 이후에도 51%가 자살시도를 했다고 응답했다. 당시 얻은 상처로 여전히 신체적 고통을 지니고 살아가는 피해자들도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와 경기도의 공식 사과 외에도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피해 회복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국가 사과와 관련해선 곧 관계부처에 권고문을 보내고 책임있는 분들과 만나 (권고대로) 이뤄질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선감학원 피해자 한모씨는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닌 아동 인권유린 사건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울먹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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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합·구타 일상, 탈출하다 사망…'피해자 5000여명' 선감학원 무슨 일이

기사등록 2022/10/20 18:08:06 최초수정 2022/10/20 18: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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