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이숙자 화백 "보리밭 그리자 천경자 벗어나...이젠 그림에 나를 바치고 싶어"

기사등록 2022/10/18 16:09:16

최종수정 2022/10/31 10:01:51

'선화랑 45주년' 특별전 초대…이브의 보리밭·백두산등 40점 전시

천경자 직계 제자...전통 채색화 명맥 유지해 온 독보적인 작가

80세에도 작업실로 매일 출근 작업..."보리밭 아직도 그리고 싶어"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 참석하여 신작 '청보리 벌판'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 참석하여 신작 '청보리 벌판'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늙음은 소멸이 아니더라."

'보리밭' 작가로 유명한 이숙자 화백은 팔순의 깨달음, '삶의 기쁨'을 전했다. "지금도 그릴 수 있어 고맙고 좋은 시절입니다. 감사한 마음입니다."

18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만난 이 화백은 정정했다. 허리가 꼿꼿하고 날씬해 바지 정장 패션이 잘 어울렸다. 80세라는 나이가 무색했다.

'선화랑 45주년' 특별전에 초대되어 개인전을 연 이 화백은 여전히 '그림 욕구'가 강했다. 이번 특별전에 대표작인 보리밭 시리즈와 초대형 작품인 '백두산' 등 40여 점을 내놓았다.

이 화백은 홍익대 출신으로 고(故) 천경자 화백(1924~2015)직계 제자다. 196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입선 이후 1980년 국전과 중앙미술대전에서 동시에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채색화의 정통성을 수립하는 작가'로 불린다. 50년 이상 석채를 이용한 채색 작업만을 고집하며 전통 채색화의 명맥을 유지해 온 독보적인 작가다.

청맥, 황맥 등 '보리밭' 시리즈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인 그의 자화상이 눈길을 끈다. '푸른 모자를 쓴 작가의 초상'.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19년에 제작했다. 고운 모습과 함께 처연한 표정이 감도는 자화상에서 어쩐지 천경자 화백의 분위기가 풍긴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 참석하여 자화상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 참석하여 자화상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email protected]


"지금도 인물화는 영향을 받은 선 느낌 등이 나타나요."

이 화백도 안다. "제가 무슨 그림을 그려도 천 선생 흉내 낸다고 했어요. 그 소리가 싫었죠. 그런데 '보리밭'을 그리면서 그 소리가 들어갔어요."

1977년 국전에 출품한 '청맥'을 시작으로 이듬해 1978년 '맥파-청맥'으로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 1980년 '맥파-황맥'으로 제3회 중앙미술 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때부터 '보리밭 작가'가 됐다. 80년대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보리밭이라는 일관된 주제가 정착했다. 특히 1990년에 선보인 누드화 '이브의 보리밭'은 파격과 도발로 화단을 떠들썩하게 했다. 

"제 손자들이 지금은 25살, 22살인데 어릴 적에 묻더라고요. '할머니, 할머니는 왜 벌거벗은 여자를 그려?'...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것이었어요. 발가벗은 모습을 이상하지 않은 눈으로, 보통 사람 얼굴 보듯이 낯이 익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요."

'파격의 누드화'는 2008년까지 곤혹을 치뤘다. 고양 아람누리미술관에서 전시할 때 '이브의 보리밭'은 유치원생과 초등생에겐 관람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후 8년의 세월이 지나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 초대전때 달라졌다. "예전처럼 이상하지 않은 자연스런 분위기였어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전시를 보고 전시장도 따로 출입금지띠를 만들지도 않았지요."
[서울=뉴시스]이숙자, 이브의 보리밭 90-6 Eve_s Barley Field 90-6 1990 162.1x130.3cm 순지5배접, 암채 Stone color on Korean paper
[서울=뉴시스]이숙자, 이브의 보리밭 90-6 Eve_s Barley Field 90-6 1990 162.1x130.3cm 순지5배접, 암채 Stone color on Korean paper


1990년대 본격적으로 등장한 보리밭 속 여성의 누드는 ‘이브의 보리밭’으로 불린다. 이브가 단순히 성적인 대상이 아닌 더욱 살아있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생명력을 가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은 자연의 원천이자 생명의 근원입니다."

전시장에 나온 누드화 에피소드도 전했다. 음모가 드러난 그림에 대해 "(당시 걸크러쉬였던)천경자 선생도 이것 좀 안 그렸으면" 했고, 선배 화가는 "대중 앞에 저렇게까지 적나라하게 그리면 창피하지 않아?"라는 소리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왜 저렇게 그렸지? 라는 생각을 했다. 자다가 벌거벗고 있는 꿈을 꾸면 부끄럽고 난처한테 왜 그런 그림을 그렸을까? 의문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인권에 대한 반항의식, 인습에 대해 반항하는 것이 내 의식속에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볼테면 봐!라고 그렸죠."  당시 그 음모에 대해 '멀리서 보면 거무스름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터럭 하나하나 자세히 그렸다'는 한 평론가의 평도 있었는데, 실은 '모델의 사실화'다. 이 화백은 "10년간 함께한 누드 모델의 진짜 모습이어서 그리면서도 그리고 나서도 부끄럽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고 했다.

이 화백은 "누드화는 당당한 여성의 역할, 여성의 지위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작업하면서 쉬는 시간에 소설 '혼불'을 읽었는데 그 세월이 500년전도 아니고 불과 80년전이더라"면서 "지금 생각하면 똑같은 인간인데...그런데 세상은 변함이 없잖아요. 이란에서 히잡 반대시위가 여전하다"며 여성인권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보였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 참석하여 작품 '군우-얼룩소 1, 2, 3, 4'를 설명하고 하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 참석하여 작품 '군우-얼룩소 1, 2, 3, 4'를 설명하고 하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email protected]


"지난 2년은 저를 그림에 바치는 생활을 했어요. 살아오면서 쭉 시간에 쫓기듯 살아왔는데, 요즘은 휴식을 안 하면 그림을 못 그려요. 그래도 마음속으로 기쁨이 일어납니다."

화백은 평생 시간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젊을 땐 쫓기듯 작업을 했다면, 지금은 시간에 눌린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작업실에서 지내며 작업하지만, 2시간 정도 집중하면 힘에 부친다. 쉬기를 반복하며 작업하고 붓을 놓지 않고 있다.

"주름은 용서가 안되더라."

'푸른 모자의 자화상'으로 다시 이야기가 돌아갔다. "제 늙은 모습을 그대로 그리는데 주름은 못 그린 것 같이요."

"솔직하지 못했다"고 고해성사하듯 말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을 못한 작품이 있어요. 더 처절하게 지금의 나를 그리고 싶었어요. 실은 정말 처절한 나를 그리고 있었죠. 지금보다 더 말랐을 때, 주름이 많은 나를 데생을 다하고 색칠도 했는데...아...이번에 냈어야 하는데"

이 화백은 고개를 떨구며 "제 작품은 시간을 오래 끌면서 하는 작품들이다. 전시해야죠. 전시를 할 것"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email protected]


'천경자'를 벗어난 '보리밭 작가'는 이제 그 명성도 벗어나고 싶다.

"'보리밭 작가'라는 타이틀도 부담스러워요. 자기복제같이 또 그리고 또 그리고, 그런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보리밭은 아직도 그리고 싶어요. 제가 죽고 나서도 뭔가 사람들 가슴에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보리밭은 아직도 그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그는 "먹고사는 것도 힘든 시절, 화가가 되어야 겠다는 꿈, 그 그림에 대한 꿈 때문에 산 것 같다"고 했다.

이 화백은 "지금껏 그림 그리고 살아온 게 감사하다"고 했다. "'보리밭 작가'든 뭐든 관심 없어요. 나 스스로 바치는 작품, 내가 다 나를 바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삶은 감각의 향년이다. 노년의 그는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변함없는 열정과 집념을 보였다. 여전히 화가로서 늘어나고 있다. 선화랑 한국화가 이숙자 개인전은 11월19일까지 열린다.
[서울=뉴시스]이숙자, 황맥 벌판 Yellow Barley Field 2021 227.3x181.8cm 순지5배접, 암채 Stone color on Korean paper
[서울=뉴시스]이숙자, 황맥 벌판 Yellow Barley Field 2021 227.3x181.8cm 순지5배접, 암채 Stone color on Korean paper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화가 이숙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보리밭' 시리즈로 유명한 이 작가는 한국의 채색화 발전에 평생을 헌신해온 작가이다. 2022.10.18.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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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아트클럽]이숙자 화백 "보리밭 그리자 천경자 벗어나...이젠 그림에 나를 바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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