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와인 양조는 기원전 6000년경 흑해 연안의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됐다. 기원전 5400~4000년쯤 지금의 이란, 이라크 지역인 소아시아로 전파됐고, 기원전 4000~3000년쯤 레반트(현재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레바논이 위치한 지역)와 그리스 에게해 지역으로 확산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도 일찍부터 와인을 마셨다. 하지만 기원전 3000년경 이전의 선왕조 시대에는 와인을 생산하지 못해 주로 레반트 지역으로부터 수입했다. 직접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한 시기는 초기 왕조 시대인 기원전 3000년경부터다. 이때 맥주는 이미 보통 사람들이 식사 대용으로 마실 정도로 대중화돼 있었다.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인부들에게 급료 대신 맥주가 지급되기도 했다. 그 당시 노동자들의 도시락에는 빵과 맥주와 양파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와인은 아주 귀하고 비싸서 왕족이나 상류층만 마실 수 있었다. 장례식, 사원의 제례 등 특별한 경우 또는 천식을 치료하거나 부기를 가라앉히는 등 의료용으로도 쓰였다. 기후나 토양이 밀의 생산에는 적합했지만 포도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나일 델타는 지금의 카이로를 정점으로 지중해를 향해 부채처럼 펼쳐져 있는 모양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곳으로 흐르는 나일강의 여러 지류 중 서쪽의 알렉산드리아로 이어지는 강을 ‘웨스턴 리버(Western river)’라 불렀다. 이곳 근처의 말콰타(Malqata), 아마르나(Amarna) 등에서 와인이 생산됐다.
고대 이집트의 와인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과 유물이 남아 있다. 고왕국(기원전 2575~2150년) 시대부터 로마 시대(기원전 332년~기원후 395년)까지 만들어진 이집트 왕과 귀족의 무덤 벽에는 포도나무의 재배, 와인의 생산,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고 토하거나 취해서 들려 나가는 장면 등이 그림으로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그 당시 포도나무의 재배법이나 와인의 양조법도 오늘날과 큰 차이가 없다. 와인을 담았던 토기인 암포라는 기원전 4000~3100년경 선왕조 시대의 무덤에서도 발견된다. 기원전 3150년경 원왕조 시대의 스콜피온 1세의 무덤에서는 약 4500리터의 와인을 담은 700개의 암포라가 발견되기도 했다. 와인을 담은 암포라는 과일, 송진, 허브, 향신료 등을 채워 봉했다.
암포라 단지에는 요즘의 ‘와인 라벨’처럼 와인에 관한 정보를 기록했다. 신왕국 시대(기원전 1539~1075년) 무덤에서 발견된 암포라에는 와인의 생산연도, 와인의 이름, 품질, 생산지역, 일반용 혹은 왕실용을 나타내는 표시, 와인 생산자의 이름, 직위 등이 새겨져 있었다. 나일강 서쪽의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된 투탕카멘 왕(기원전 1341~1323년)의 무덤(KV62)에서 발견된 와인 암포라 26개 중 하나에는 ‘재위 5년, 나일강 유역의 아텐에서 생산된 달콤한 와인, 수석 와인 생산자 낙트’라는 정보가 기록돼 있다. 암포라에 아직 남아있던 와인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모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에게 레드 와인은 부활의 신 ‘오시리스(Osiris)의 피’를 상징했다. 또 홍수 시 범람하는 나일강의 붉은 빛 황토물의 상징으로도 보았다. 사원들도 자체 와이너리를 소유했는데, 람세스 3세(기원전 1217~1155년) 시절 아문라 신을 모신 사원에는 무려 513개의 포도밭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거의 3000년에 달하는 동안의 기록에 레드, 화이트 등 와인의 종류를 나타내는 기록이 없는 점은 미스터리다. 기원전 3세기에야 비로소 아테나에우스가 쓴 책에 알렉산드리아 근처 마리우트 호수 지역에서 생산되는 ‘마레오티스(Mareotis)’ 와인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이 화이트 와인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이다. 이 와인은 클레오파트라가 좋아해서 안토니우스를 유혹할 때 내놓았다는 기록도 있다. 이 당시에도 와인을 칠링했는데, 암포라 단지에 물을 뿌려 바람이 잘 통하는 지붕에 두거나 노예들이 선반에 올려놓고 와인 단지에다 부채질을 했다.
와인은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세데(Shedeh)’ 와인 등 세 종류가 있었다. 세데 와인은 레드 와인을 여과해 열을 가했다(대영 박물관 소장 파피루스 기록). 투탕카멘 무덤 석실에서 발견된 3개의 암포라에는 방향에 따라 서쪽 것은 레드, 동쪽은 화이트, 남쪽은 세데 와인을 담겼는데 이는 왕의 3단계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달콤하거나 갓 빚은 ‘아시스’(Asis), 물과 향신료를 섞은 ‘맘삭’(Mamsak) 혹은 ‘메섹’(Mesekh), 알코올 도수 7~10도로 강한 술(와인과 맥주)인 ‘세카르’(Shekar)로 와인을 구분하기도 했다.
와인 생산은 기원전 30년 로마가 이집트를 정복한 다음에도 계속됐고, 로마인들은 이집트인들의 음주 문화를 존중했다. 최근 나일강 유역에서 로마 시대의 와이너리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다. 기원후 3세기까지는 이집트 인구의 대다수가 기독교인이었고, 교회나 수도원이 주로 와인을 생산했다. 7세기에 이슬람이 이집트를 정복한 후에도 이교도들에게는 제한적으로 와인의 생산과 유통이 허용됐다. 하지만 이슬람 교도에게는 술을 금했기 때문에 이집트의 와인 산업도 급격히 쇠퇴한다. 현재는 생산과 소비 모두 미미하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