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관광 메들리는 여전히 달린다

기사등록 2022/09/11 14:00:00

지난달 27일 종로 국일관서 열린 '퓨처 관광 메들리' 호응

'테크노 뽕짝 원조' 이박사·수작 '뽕' 음반 250 출연

[서울=뉴시스] '퓨처 관광 메들리' 이박사. 2022.09.11. (사진 = ACS·알3028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퓨처 관광 메들리' 이박사. 2022.09.11. (사진 = ACS·알3028 제공) [email protected]*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몽키 몽키 매직 몽키 매직~♪♬ 뚜루두루두루뚜뚜 쨔라쨔쨔쨘쨘. 아 영맨이다~. 그뤠에? 아싸! 영맨. 자리에서 일어나라!"

'테크노 뽕짝의 원조' 이박사의 주술 같은 노래에 20대들이 신나게 몸을 흔들어댔다. 이박사가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을 때, 태어나지 않은 이들이 그와 교감한다. 이박사의 대표곡 '몽키 매직'과 그가 미국 디스코 그룹 '빌리지 피플(Village People)'의 'Y.M.C.A.'를 리메이크한 '영맨'의 그로테스크한 조합은 여전히 신명났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무도회장 국일관에서 펼쳐진 논스톱 하드코어 뽕 잔치 '퓨쳐 관광 메들리' 현장. 우리나라 클래식 성지 '예술의전당'을 장소 수식어로 당당히 내건 국일관에서 펼쳐진 '뽕 댄스'는 또 다른 예술 형태였다. 어르신들이 콜라텍 장소로 쓰는 이곳에서 젊은이들은 "이박사! 이박사"라를 끊임없이 연호했다.

트로트 메들리의 탄생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EDM 뽕짝 '아모르 파티'로 현재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김연자가 트로트 메들리 앨범 '노래의 꽃다발'로 초창기 고속도로 휴게소 음반판매대를 장악했다.

이후 1980년대 주현미·김준규가 함께 녹음해 발표한 '쌍쌍파티'를 통해 '트로트 관광 메들리'가 전성기를 구가한다. 1970년대 개통된 고속도로가 본격적으로 확장하면서 고속버스를 빌려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는 단체 관광객이 급증했고, 이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트로트 메들리가 주인공 역을 했다. 물론 자차 이용자들의 지루한 고속도로 여행길에 동반자가 돼 주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퓨처 관광 메들리' 250. 2022.09.11. (사진 = ACS·알3028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퓨처 관광 메들리' 250. 2022.09.11. (사진 = ACS·알3028 제공) [email protected]*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일부에서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폄하하기도 한 트로트 관광 메들리는 관광버스 가이드에서 한 때 일본 톱스타로 활약한 이박사로 인해 2000년대 초반엔 젊은 층이 향유하는 문화가 되기도 했다.

당시 유행하던 '엽기 코드'와 맞물린 측면이 있었으나 트로트와 테크노의 경쾌한 만남, 능수능란한 입담의 중독성은 매우 강력했다. 한 때 뜸하던 트로트 메들리는 2010년대에 들어 나운도와 금잔디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음악을 시작했으나 느지막한 나이에 '고속도로 황태자'로 불리는 나운도가 주목할 만하다. 다단(多段) 전자올겐(전자오르간·신시사이저)를 직접 연주하며 트로트의 스펙터클함을 전시하는 그는 트로트 오디션의 원조였지만 주목 받지 못했던 엠넷 '트로트 엑스'(2014)에 출연해 대중에 홀로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박사, 나운도 등 관광 트로트 메들리의 주역들을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다시 핫한 아이템으로 등극시킨 주인공은 프로듀서 겸 DJ 이오공(250·이호형)이다.

[서울=뉴시스] '퓨처 관광 메들리'. 2022.09.11. (사진 = ACS·알3028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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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드롬을 일으킨 걸그룹 '뉴진스'의 곡들을 만들기도 한 이오공은 어떤 장르에도 능해 '장르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특히 그가 3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내놓은 첫 음반 '뽕'은 가장 개인적인 취향과 기억으로 '뽕'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와 논의를 끌어낼 수 있는 명반이다. 컴퓨터 음악으로 재해석된 '뽕'들은 당신이 들었던 '뽕' 중에서 가장 세련된 뽕이며, 어떤 EDM보다도 춤 추기에 좋은 댄스 음악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특히 음반 '뽕'은 인문학적이다. 단순한 노래 모음집이 아니라 인간 그리고 삶과 관련한 문화와 사상의 집약체가 된다. 이박사가 건반 연주자 김수일과 함께 만들어낸 사운드, 나운도의 고속도로 메들리가 레퍼런스가 돼 단순한 음반이 아닌 뽕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물이 됐다.

이오공은 '퓨쳐 관광 메들리'에도 출연했다. 앞선 음악 좀 듣는다는 Z세대들이 상당수 국일관을 찾은 이유다. 라이브 셋이 아니었음에도 이오공은 현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뽕'에 실린 곡이자 색소폰 거장 이정식이 참여한 '로얄 블루'는 단숨에 무도회장 안을 짙은 블루스 향기로 가득 채웠다. 안드레아 보첼리 '이제 다시 헤어지지말아요'(Mai Piu cosi lontano)와 '뽕'에 실린 곡으로 베드룸 팝 분위기를 풍기는 '휘날레'가 드라마틱하게 이어지는 구간은 감성적이었다.

[서울=뉴시스] '퓨처 관광 메들리' 현장. 2022.09.11. (사진 = ACS·알3028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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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스웨덴의 혼성 4인조 '에이스 오브 베이스'의 '더 사인', 미국 볼티모어 사운드의 DJ 겸 프로듀서 로드 리(Rod Lee)의 '댄스 마이 페인 어웨이', 김수일이 함께 한 자신의 곡 '모든 것이 꿈이었네'가 이어지는 순간들 모두 명장면들이었다.

'퓨처 관광 메들리'엔 이박사, 이오공 외에도 7080 한국 가요에 특화된 DJ 타이거 디스코 등이 출연했다. 다섯 시간 러닝타임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내마음을 사로잡은 그대 / 삼바춤을 추고 있는 그대"라며 DJ가 트는 설운도의 '삼바의 여인'을 떼창하는 젊은이들은 그 자체로 새로웠다.

전자올겐과 드럼머신을 무표정한 표정으로 그러나 능숙하게 소화하는 오부리(obbligato) 담당자가 포문을 연 이날 공연은 알록달록 조명, 정겨운 만국기를 배경으로 '환상적으로 환장하게 만드는 환희'를 선사했다.

잘 빠진 정장을 입은 선남선녀들, 세련된 스니커즈를 신은 패션 피플, 최근 가장 뜨거운 얼터너티브 K팝 그룹 '바밍타이거'에 소속된 래퍼 오메가 사피엔 같은 핫한 뮤지션들, '한마음 산악회'를 연상케하는 등산복을 입은 이들, 라이더 복장으로 자전거 타듯 춤추는 중년들 그리고 구석에 마련된 소파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한 노인들까지. 또 5일장 장터나 예전 고소도로 휴게소에서 볼 수 있던 민속옷을 입은 탈인형이 러닝타임 내내 무대 곳곳을 누볐다.

[서울=뉴시스] '퓨처 관광 메들리'. 2022.09.11. (사진 = ACS·알3028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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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퓨처 관광 메들리'는 20~30년 전 유물로 여겨진 '관광 메들리'를 세대를 아우르며 인디문화의 하나로 소개했다는 점에서 최근 음악업계에서 주목 받았다. 아이돌 위주의 K팝과는 다른, 우리 역사의 인문학적인 정서가 녹아든 K팝이라 칭할 만했다. 복고 열풍도 꾸준한 만큼, 조금 더 관심을 받는다면 인디 음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중음악계 다양성에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현대무용 쪽에선 권령은 안무가가 '당신은 어디를 가도 멋있어'라는 작품에서 1980년대 유행했던 '관광버스 춤'과 K팝 댄스'를 같이 조명하면서 '왜 모여서 춤을 추는가'에 대한 우리 공동체성에 대한 탐구를 하기도 했다.

또 이번 추석 연휴에 고향을 오가며 고속도로 휴게소를 유심히 살펴본 당신이라면 눈치를 챘겠지만, 카세트 테이프에서 CD 또는 USB로 장치가 진화했을 뿐 여전히 고속도로 메들리는 존재하고 있다.

대중음악 칼럼니스트인 김아름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전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은 '퓨처 관광 메들리'에 대해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시공간을 초월한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는 신스(Since) 1920 카바레 국일관. 이곳에 '뽕'으로 획을 그은 전설의 뮤지션과 DJ 250이 모여 파티를 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올해의 한국 대중음악사의 중요한 사건'이라 생각한다"면서 "근사하게 멋을 내고 스텝을 밟는 중년층, 퓨처리즘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가 뒤섞여 '뽕'을 즐기는 광기 어린 현장은 서브컬처 신에 목격한 가장 센세이션한 순간"이라고 봤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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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관광 메들리는 여전히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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