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부진에 제조업 재고 2개월 연속 증가
재고율 125.5%로 26개월 만에 최고치 찍어
중국 주요 도시 봉쇄 조치에 수요 감소 영향
경기 선행지수 꺾여…"수출 증가 둔화 등 우려"
[세종=뉴시스] 이승재 기자 = 중국 주요 도시 봉쇄 여파로 반도체 등 제조업 재고율이 26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수요가 줄어들면서 시장에 내보내지 못해 쌓인 상품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국내 산업 생산 지표도 꺾였다. 여기에 고물가·고금리 영향으로 소비 위축이 이어지는 추세다.
글로벌 성장 둔화, 주요국 통화 긴축 등 대외 리스크 요인으로 수출·내수 경기가 당분간 반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일 통계청의 '7월 산업활동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 7월 제조업 재고 지수는 131.1(계절조정, 2015=100)로 전월 대비 1.4% 증가했다. 최근 2개월 연속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중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 가운데 하나인 반도체 재고가 한 달 전과 비교해 12.3% 늘어난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실제로 같은 기간 반도체 수출과 내수 출하는 각각 27.8%, 8.9% 줄었고, 반도체 생산도 3.4% 감소했다.
이 영향으로 지난 7월 제조업 재고율(재고/출하 비율)은 125.5%로 전월 대비 1.3%포인트(p) 상승했다. 이는 2020년 5월(127.5%) 이후 2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 반도체 산업 부진은 중국 내 수요 위축과 연관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 주요 도시에서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봉쇄 조치가 잇달아 시행되면서 국내 산업에도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중국은 반도체 수요가 굉장히 높은 나라인데 내부 사정으로 수요가 주춤했다"며 "스마트폰 등 전방산업 수요가 둔화되면서 생산, 출하가 감소했고 재고가 쌓이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에 지난 7월 전 산업 생산은 서비스업(0.3%), 공공행정(4.6%) 등에서 호조세를 보였음에도 광공업(-1.3%), 건설업(-2.5%) 부진으로 전월 대비 0.1% 감소했다.
생산 부진은 국내 소비와도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지난 7월 소매판매는 전월과 비교해 0.3% 감소했다. 이 수치는 최근 5개월 연속 내림세인데 이는 1995년 통계 집계 이래 처음이다.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내 소비 둔화에 따른 면세점 화장품 판매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대면 활동이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가정 내 음식료품 소비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통상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물가 고공행진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최근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농산물 공급 차질도 물가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오는 2일 발표될 통계청의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지난 7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6% 넘게 치솟으면서 24년 8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바 있다.
앞으로의 경기 전망도 밝지는 않다. 경기 국면을 예측할 때 쓰이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 7월 기준 99.4로 전월과 비교해 0.3p 하락했다. 지난해 7월부터 10개월 동안 꾸준한 하락세를 이어오다 지난 5월, 6월 보합세를 보인 이후 재차 꺾인 것이다.
이 지수는 경기 흐름을 민감하게 보여줄 수 있는 7가지 지표로 구성된다. 지난 7월의 경우 재고순환지표(-1.5%p), 경제심리지수(-2.6p), 수출입 물가 비율(-0.6%), 코스피(-4.4%), 장단기 금리차(-0.17%p) 등 5개 지표가 약세를 보였다.
이에 경기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부도 당분간 불확실성이 높은 경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하방압력에 따른 수출 증가세 둔화, 반도체 단가 하락, 제조업 재고 증가 등이 생산 회복 흐름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소비·투자의 경우 8월 집중호우에 따른 소비 및 건설 활동 영향, 고물가·금리 인상 지속, 주가·환율 등 금융 시장 변동성 확대 등이 리스크 요인"이라고 전했다.